설 동 원

바람 자고 간 곳에 하늘 이불 깔려 있다

풀들 늦잠을 자고

귀먹은 문고리 구부린 채 묵상에 들고

쇠스랑은 옛 주인 손길 잊지 못하고

호미, 삽. 괭이, 한 촉의 꿈 버리지 못하고 있다

여기 건네기 어려운 말이 있고

건너기 어려운 강이 흐르고 있다 심심찮게

뒷마당 장독대에 옛 주인 체온 스며들고

튓마루에서 작은 기침 소리가 씰린다

담배 부스러기처럼 옛이야기가 날리고

제 그림자에 놀라 달을 보고 짖어대던

개의 밥그릇에는 얼지 않은 눈물 고여 있다

눈부신 것들은 잠들고

빛을 잃은 것들만 남아 빈집을 지킨다

새들 그리움의 날개 짓하며 울다 떠나고

풀벌레 빈집 막장 그늘에 남아

서러움을 뜸질하면

내 마음 밑뿌리부터 아파 온다

빈 집은 오래된 시간을 붙들고 서 있다, 어쩌면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가득 차 있는 것인지 모른다. 살다가 떠난 식솔들의 흔적들, 그들이 체온이며 그들이 말소리며 그림자까지도 고스란히 간직하고 조금씩 낡아가고 있는 것이다. 시인은 그 빈집에 가득 고여 있는 허허로운 시간들을 읽고 있는 것이리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