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제 림

학습진도 절반도 못 나간 느림보 국어 선생처럼

큰일났다 시간 없어서, 시간 없어서

이제 그냥 막 읽어 넘어가는 수밖에 없다

따라 읽거라 정신 똑바로 차리고! 그러는 것처럼

넘어가자, 내년에 또 배운다 하는 것처럼

늦도록 놀던 바람은 “어서 가세, 심 소저” 그러는 것처럼

남은 잎새들 “아이고 아버지” “아이고 청아”

그러는 것처럼

늦가을의 시간은 매우 황급히 지나간다. 황량함이 깊어지며 찬바람 앞에 선 식물들에게는 다급하기 그지없는 시간이다. 시인은 아버지 심봉사와 화급하게 이별하고 뱃사람들과 떠나가는 심청을 보여주고 있는데, 심청전의 한 대목을 끌어들여 낙엽과 바람이 자아내는 황량한 가을의 시간을 읽어내고 있는 것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