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하 석

깡통들 빈속에 고함 숨긴다, 반짝이는

쇳조각에 부딪히며, 흐린 하늘 빈속에 차고

넘치며, 아랫도리 벗겨져 붉게 푸르게 흩어지며

불에 그슬려 푸른 여인의

입술 타버렸고, 고운 눈 땅속에 처박힌다

여인의 눈 밑 상표들도 노랗게 땅에 묻히고

그 위 어둠과 비와 햇빛과

비닐의 찍긴 팔이 와서 감는다

반짝이는 유리 조각들 얼었다가 흐려지는

하늘, 치약 껍질이 긋는 허공 가득히

빈속 잠재우는 눈도 내리고, 이윽고 오는

봄, 풀씨 하나 떠돌다가, 철조망 안

쓰레기 하치장에 떨어져 싹을 틔운다

허물어진 연탄재 구멍 속으로 하늘 치어다보며

그 싹 풀들로 자라나 쇠와 유리 조각과

빈 깡통 덮어, 사월이면 풀의 상공에

꽃도 피워낸다, 스스로 이룬 풀씨

다시 사방에 날리며

깡통, 쇳조각, 비닐, 유리조각, 치약껍질 같은 살벌하고 비정한 현대문명의 찌꺼기들의 틈새를 비집고 연약한 풀씨 하나가 떠돌다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워내는 것을 포착한 시인은 떠도는 연약한 풀씨를 말하면서 사람을 보고 있다. 강인한 생명력으로 살아가는 도시 빈민 같은 사회적 약자들의 생존을 위한 극한의 상황들에게 애정어린 시인의 눈길이 가 닿아있음을 느낄 수 있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