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용 한

버릇 없는 봄이 왔다

그 봄, 어머니가 죽고 목련이 피었다

나는 자꾸 소주병 속을 걸어

뿌리 없는 그리움에 닿았다

손 내밀면 무수한 빈 손이 잡혔다

있지도 않은 애인이 그리웠고

깜짝깜짝 비가 내렸다

훌훌 담배연기 털어버리며

내 쥐빛깔 일기를 펼치면

깨알 같은 슬픔이 돌아앉았다

내 혼자 걷는 손금을 따라

오르지도 못한 지붕엔 무성한 잡풀이 돋고

창 밖에 너무 빠른 일몰이 닥쳤다

문 닫아걸면 외로운 시간을

어느덧 어둠이 먼저 와 잠겼다

나는 촛불도 없이 꺼지는 의식을 붙잡고

찢어낸 노트 한 귀퉁이

편부슬하의 시를 적어보았다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고향집은 잡풀만 무성한 폐가가 되어있는 상황 앞에서 시인의 암울한 심사가 그려져 있음을 본다. 상실은 또 다른 상실로 이어지고 그리움은 또 다른 그리움에 가 닿아 있어 이러한 우울한 시를 쓰게 했는지 모른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