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성 희

손님이 없는 겨울 민박집

밤새 화투를 치는 일행의 방을 빠져 나와

소피보러 가서 문득 다시 만나는 운문사

엎드린

젊은 여승의 굽은 등에

흐르지 못하고 맺힌 적막 같이

재래식 변소 삼십 촉 전등불빛이 어둠 속에 고이는데

홀로 남은 주인 할머니 기침 소리를 듣는다

달빛이 허물어진 기와를 타고 내려와

감나무 완강한 자세 속에서

판독되지 않는 몇 개의 낡은 욕망을 어루만지고 나면

다른 세계로 풍경 소리 자꾸만 불리어 가는

빈 마당

술이 취해

필름이 끊겼다 이어졌다 하면서 남포동 골목길

가로등에 등 기대고 만나던 적막이여

그대 이 빈 마당에 새로 낯선 겨울로 섰다가

어느 인적이 끊긴 골목길에서 다시 만날 때까지

또 오래도록 적막하기를

겨울밤 비구니들의 수도 도량인 운문사의 적막함을 표현하고 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다 남포동 골목길의 가로등에 등대고 만나던 적막감 같은 것을 느꼈다고 토로하며 운문사의 절대 적막의 경지에 깊이 빠져든 시인을 본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