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며칠 경북대도서관에서 백두대간 사진전 작가 로저 셰퍼드 씨를 만났다.

그는 뉴질랜드 경찰관 출신이며 총리 경호원으로 활동했다고 한다. 2006년경 한국에 왔다가 한국의 산에 매료되어 현재도 이 땅에 살고 있다. 딱 벌어진 어깨에 탄탄한 체구, 훤칠한 키는 전문 산악인의 요건을 갖춘 듯했다. 그의 사진 개막식에는 북한과 통일 문제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다. 이어진 사진 설명회에는 20여 명이 남아 그의 북한 백두대간 탐험 경험을 재미있게 경청했다. 북한 소식이 궁금한 현실에서 퍽 유익한 시간이 됐다.

분단 이후 세계 최초로 백두대간을 종주한 그는 한때 대구에도 살았고 지금은 지리산 자락 전남 구례에 살고 있다. 그는 2006년 남쪽의 지리산 산행을 시작으로 2011년과 2012년 북쪽 백두대간을 등반했다. 백두산에서 출발하여 개마고원을 거쳐 금강산까지 등정한 소중한 경험을 가졌다. 이번 사진전에서 백두대간 종주 시 찍은 사진 50여 장을 공개했다. 그는 한반도의 산을 영문으로 번역해 서양인들에게 소개하는 하이크 코리아(HIKE KOREA) 대표이사직을 맡고 있다. 나는 경북대 재직 중 통일관련 강의 시 그의 백두대간 종주 MBC 다큐를 학생들에게 보여준 적이 있다. 그와의 만남은 초면이 아닌 구면인 셈이다.

로저 셰퍼드 씨는 평양소재 조선-뉴질랜드 친선협회 초청으로 북쪽의 백두대간을 등행했다. 북한당국은 처음에는 그의 방북 신청을 거부했지만 순수하게 산을 등산하겠다는 그의 의지를 막을 수 없었다. 백두대간은 북쪽의 백두산에서부터 남쪽의 지리산 천왕봉에 이르기까지 장장 1천700km의 방대한 거리이다.

그의 이번 사진전에는 남쪽에 잘 알려지지 않은 북쪽의 두류산, 백역산, 고대산, 옥련산의 모습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러나 한반도의 분단 상황은 힘 있게 뻗어 내리는 백두대간의 정기마저 끊어 버리고 말았다.

그는 사진 설명회에서 우리가 궁금해 하는 북한의 산을 재미있게 설명했다. 특히 그는 북쪽의 산간 오지 마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도 생생하게 소개했다. 특히 함경도 개마고원 일대의 깊은 산골의 주민들은 자연과 풍토 때문에 많이 다르다는 증언도 했다. 북한의 험준한 산에는 항일 빨치산의 요새가 잘 보존되어 있다고도 했다. 북한 산촌에는 수십 종의 수제 소주가 있고 산천어의 맛이 좋다고 소개했다. 감자를 주식으로 북한 산촌 사람들은 부족함도 만족함도 없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설명회는 북한의 산야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계기가 됐다. 북한의 산하가 황폐화된 현황을 묻는 질문에 북한의 야산은 황폐화 됐지만 백두대간의 산림은 모두 잘 보존되어 있다고 전했다. 특히 개마고원 부근의 어느 산은 바위덩이 밑으로 강이 흐르는 세계에서 보기 드문 사례라고 설명했다.

그는 설명회를 마치면서 남북의 교류와 협력은 자연스럽게 성사될 것으로 예상했다. 북한의 때묻지 않고 순수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남한사람들이 잘 이해해줄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남북을 자유롭게 오가는 뉴질랜드인 셰퍼드 씨의 입장이 몹시 부러운 오후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