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김정은은 조부 김일성의 생일인 태양절에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했다.

코로나19로 지난해에 없었던 행사가 재현된 것이다. 김정은은 부인 리설주, 당 조직비서 조용원, 군 총참모장 박정천, 당부부장 현송월, 여동생 김여정을 대동하고 태양궁전에 참배했다. 김일성 광장에서는 남녀가 춤추는 야회가 열리고, 불꽃놀이 행사도 이어졌다. 김정은 부부가 참석한 특별 공연에는 참석자 모두 마스크를 벗고 관람했다. 김정은이 공개적으로 태양절 행사를 개최하는 것은 그들이 처한 대내외 위기를 감추고 인민들에게 자신감을 심기 위함일 것이다.

북한 헌법 서문은 김일성에 대한 찬양으로 메워져 있다. 김일성은 민족의 위대한 태양이며, 사회주의 조선의 시조이며 조선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의 창건자로 명기되어 있다. 나아가 김일성은 항일 혁명투쟁의 영도자, 불럭불가담 운동과 세계 정치의 원로, 령도 예술의 천재, 백전백승의 강철의 령장, 위대한 혁명가이며 조국 통일의 길을 연 위대한 분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므로 모든 인민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를 ‘영원한 주석’으로 모셔야 하며, 북한 헌법은 ‘김일성 헌법’이라고 결론지어 그에 대한 우상화 토대를 마련했다.

북한은 1974년부터 김일성의 생일인 4월 15일을 태양절로 지정했다. 1997년부터는 김일성 출생연도(1912년)를 기점으로 하여 ‘주체 연호’까지 쓰고 있다. 심지어 북한 당국은 김정일 생일 2월 16일도 광명성절로 지정하여 경축하고 있다. 이는 북한이 김 부자의 위대성을 상징 조작하기 위해 설정한 장치이다. 북한당국은 초중등 교과서에 ‘김일성과 김정일의 어린 시절’이라는 교과목까지 개설 교육하고 있다. 김일성 부자는 이미 신적 존재로 추앙받은 지 오래다. 종교가 없는 북한 땅에서 김일성은 하느님 대접을 받고 있다. 평양 거리에는 ‘김일성 수령은 우리와 함께 살아계신다’는 영생의 표어까지 등장하였다.

이같은 현상은 사회주의 국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일이다. 중국 사회주의 창립자 모택동, 소련의 볼셰비키 혁명가 레닌, 베트남의 호지명, 쿠바의 카스트로도 존경의 대상은 될지언정 김일성처럼 절대적 숭배의 대상은 아니다. 오래전 내가 만난 중국의 북한 전문가들까지 북한의 세습체제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재산 상속까지 금지된 사회주의에서 권력 상속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북한은 사회주의 혁명 전야의 반봉건주의에도 불구하고 왕조적 3대 권력 세습을 정당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태양절 행사는 북한이 사회주의적 모순을 감추기 위한 수단이다. 북한은 최고 지도자를 위해 이데올로기까지 급조했다. 김일성의 주체사상은 김일성의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그들이 강조하는 ‘사회 정치 생명체론’도 김일성을 신격화하기 위한 장치이다. 그들의 수령론이나 ‘백두 혈통’ 역시 권력 승계를 위한 반사회주의적 이론일 뿐이다. 북한의 태양절 행사가 지속되는 한 북한의 독점체제는 존속될 것이다. 이러한 체제하에서 북한의 개혁·개방은 사실상 기대하기 어렵다. 북한이 집단지도체제로 가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