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의 매력은 흥과 신명 나무와 꽃도 춤추게 한다”
“국악의 매력은 흥과 신명 나무와 꽃도 춤추게 한다”
  • 홍성식기자
  • 등록일 2021.03.24 20:03
  • 게재일 2021.03.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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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악협회 포항지부장 이원만 씨
‘무대’와 ‘공연’이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살아가기 위한 도구라고 믿는 이원만 씨.

한국은 문화·예술의 중심축이 서울로 설계된 국가라는 걸 누구도 부정하기 어렵다. 현실이 이러하니 지방 도시의 예술가로 살아간다는 건 힘겨울 게 불을 보듯 뻔하다.

여기에 지난해 초부터 예기치 못한 복병처럼 문화예술계를 궁지로 몰아넣은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쳤으니, 포항 예술가들의 마음은 얼마나 답답할까?

한국국악협회 포항지부장 이원만(58)씨는 20대 때부터 문화운동을 시작해 30년 넘는 세월 동안 의연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보기 드문 예술가다. 국악으로 시작했지만, 최근엔 대본 작가와 제작감독 등으로 활동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2021년 봄. 포항의 예술가들이 겪고 있는 실질적 어려움은 무엇인지, 힘겨운 시간을 이겨내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이른바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어떻게 준비하는 것인지 여러 가지가 궁금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 오늘까지 포항의 문화예술계를 바로 곁에서 지켜보며, 동료 예술가들과 함께 울고 웃었던 이원만 지부장이라면 기자의 궁금증을 풀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전화를 걸어 만남을 청했다.

아래는 샛노란 개나리가 수줍게 꽃을 피우기 시작한 지난주 포항시 남구 중앙로 ‘놀이마당 한터울’에서 이원만 지부장과 나눈 대화를 요약한 것이다.

 

경주출신 국문학도 국악으로 문화운동 시작
‘놀이마당 한터울’서 30년 넘게 예술계 지켜
포항문화재단과 ‘국악뮤지컬 강치전’ 무대에
제작감독에 가사·대본까지 활발한 창작활동
포항 토속민요 수집·공연 작품 집필 등 준비

“코로나 시대 지역 공연미술계 활성화되려면
지난해 장기읍성서 열린 소형 콘서트처럼
대중과 소통할 여러가지 방법 연구해내야”

-경주 출신으로 알고 있다. 포항에는 언제 왔는지.

△1963년 경주 건천에서 태어났다. 중·고교를 거기서 나왔다. 고등학생 때부터 문학에 관심이 많았기에 대학에선 국문학을 전공했다. 국악은 1988년 포항에 오면서 늦게 시작했다.

-국악을 접하게 된 계기는.

△문화운동을 하고 싶어 포항에 왔다. 대학 졸업 즈음에 ‘앞으로 내가 사회에 기여할 방법이 뭘까’를 고민했다. 그러다가 찾게 된 곳이 포항의 한터울이란 풍물단체다. 와서 보니 풍물도 하고, 노래도 하고, 탈춤도 하는 곳이었다. 당시엔 오가는 이들 대부분이 노동자였다. 그들과 어울리기 위해선 국악을 배울 수밖에 없었다. 북채는 그렇게 잡게 됐다.

-국악 외에도 연극 대본 작업, 문화행사 기획 등도 한다고 들었다.

△현재 포항 예술가들의 상황은 매우 열악하다. ‘오디션이 없어서 오디션에 떨어질 기회조차 없다’고 자조적으로 말할 정도다. 국악협회 일과 창작 활동을 병행하고 문화행사도 기획하는 건 포항이 가진 ‘이야기’를 보편적 메시지로 만들어 전국에 알리고 싶어서다. 그 과정에서의 성공 사례가 포항문화재단과 함께 작업한 ‘국악 가족뮤지컬 강치전(傳)’이다. 내가 제작감독을 맡았고, 가사와 대본도 썼다. 이 작품은 지역 예술가들이 오디션을 통해 참여한 작품이다. 또한, 경기도 오산과 강원도 원주 등에 초청돼 돈을 받고 무대에 올린 공연이기도 하다. 그런 과정이 내겐 상징적으로 다가왔다.

-포항 예술가들이 처한 어려움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이 지역에서 33년째 활동하고 있다. 근데 대부분의 시간을 국악 가르치는 학원 교사처럼 살았다. 대다수 포항의 예술가들이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문화예술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교육하는 게 나쁜 건 아니다. 하지만, 예술가에겐 사람들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싶다는 열망이 있지 않은가? 내 경우엔 아름다움의 다양한 형식을 공연을 통해 보여주고 싶다. 그런 작품을 생산하지 못한다면 반쪽 예술가의 삶이 아닌가. ‘강치전’ 작업을 시작한 것도 그런 열망을 현실화시키기 위해서였다.
 

이원만 지부장이 관객들 앞에서 부포놀음 무대를 펼치고 있다.
이원만 지부장이 관객들 앞에서 부포놀음 무대를 펼치고 있다.

-‘강치전’ 이야기를 조금 더 듣고 싶다.

△하나의 작품을 만든다는 건 새로운 인식을 생산하는 것이다. ‘강치전’의 경우도 그렇다. 단순히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하면 너무 평범한 서사다. 독도에서 해양생물이 사라지는 건 일본 탓만이 아니고, 보편적 인간의 문제라는 걸 말하고자 했다. 작품을 쓸 때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하는 건 새로운 인식의 생산과 그걸 표현할 정확한 방식을 찾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이 작품을 매개체로 포항의 예술가들이 즐겁게 협업하는 풍토를 만들고 싶었다.

-‘코로나19 사태’가 포항 공연예술계에 미친 영향은.

△공연이나 행사를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무대가 없으면 예술가가 설 자리도 없다. 예년에 비해 공연이 90% 이상 줄어든 상황이니 그 어려움이 어떻겠나.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고민과 노력을 하고 있는지.

△여러 분야의 예술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논의 중이다. 프랑스의 경우 작년엔 ‘내 곁에 베토벤’이란 프로그램을 만들어, 연주자들이 음악애호가의 집을 직접 찾아 유료로 연주회를 열었다고 한다. 포항의 예술가들 역시 이 국면에서 활동할 방법을 찾고 있다. 지난해 장기읍성에서 열린 ‘한정된 공간에서 한정된 인원을 대상으로 하는 콘서트’ 등이 해결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아무리 힘든 상황이라도 예술가들은 대중과 소통할 방법을 찾아가야 하지 않을까.

-지금까지 활동하며 잊을 수 없는 기억은.

△포항에 온 초기에 경주의 한 골프장 건설 반대시위 현장에 갔다. 트럭에 타고 온 풍물패들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딱 한 가락을 연주했는데, 그 자리에 있던 300여 명의 사람들이 단숨에 하나가 돼 후끈하게 달아올랐다. 19세기 말 동학농민전쟁 당시 풍물이 군대의 사기를 올리는 음악이었다는 걸 몸으로 실감한 순간이었다. 사실 징 소리는 사람의 뼈까지 흔들리게 하는 힘이 있다.

또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경주의 조그만 마을로 공연을 하러 갔는데, 주름살 가득한 어떤 할아버지가 지팡이를 던지고 북을 빼앗아 신명나게 춤을 추는 것이었다. 나중에 그분이 ‘자네들이 내 생애 마지막 춤을 반주해주러 와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는데…. 마음이 찡했다.

-국악 활성화를 위한 방안은.

△포항이 문화의 불모지는 아니다. 내게 풍물을 배운 사람만 지금까지 3천 명이 넘는다. 지역의 문화예술 활성화를 위해서는 북유럽처럼 일상생활 속에 축제를 정착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곳에선 전통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아이돌 수준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취미나 기술 교육 차원이 아닌 생활 속으로 국악을 이끌어내는 방식이 필요하다.

-지방자치단체의 예술 지원은 어떤 방식이 돼야한다고 생각하나.

△포항문화재단이 생긴 후 긍정적 변화가 느껴진다. 적지 않은 문화예술 기획자들이 거기서 활동하고 있다. 포항은 법정 문화도시이고, 경북의 문화거점도시이기도 하다. 여기에 걸맞게 다양한 문화정책 논의의 장이 펼쳐져야 한다. 포항시민과 지역 예술가들이 어떤 문화적 요구를 하는지도 귀 기울여 들어야 할 것이다.
 

포항이 문화의 불모지는 아니다. 지역의 문화예술 활성화를 위해서는 북유럽처럼 일상생활 속에 축제를 정착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곳에선 전통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아이돌 수준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취미나 기술 교육 차원이 아닌 생활 속으로 국악을 이끌어내는 방식이 필요하다. 지자체도 다양한 문화정책 논의의 장이 펼쳐져야 한다. 포항시민과 지역 예술가들이 어떤 문화적 요구를 하는지도 귀 기울여 들어야 할 것이다.

-국악이 가진 매력은 뭔가.

△‘흥(興·즐거움을 일으키는 감정)’이다. 사람만이 아닌 다른 동물, 나무와 꽃까지 함께 어울리게 하는 힘을 국악이 가졌다고 믿는다. 공동체가 더불어 즐기는 신명이 곧 국악이 아닐까? 지금은 빠른 것이 세상을 지배한 속도의 시대다. 이런 때일수록 국악이 가진 길고 느린 호흡이 절실하다.

-당신에게 국악과 공연예술이란.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준비하는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한 도구가 아닐까.

-향후 계획은.

△‘코로나19 사태’가 좀 누그러지면 국악과 서양 음악이 각각의 매력을 선보이는 작품을 만들어보려 준비 중이다. 포항의 토속민요를 수집하는 작업도 해보려 한다. 콘서트 대본과 판소리 대본 공부도 하고 있다. 대본 작가로서 전문성을 가지기 위해서다. 조금 더 나이가 들면 동네에 조그만 책방을 하나 마련해 청년들, 아이들과 함께 책 읽으며 늙어가고 싶은 게 꿈이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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