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이재현
동덕여대 교수

“볼수록 아름다운 스물넉 자는 / 그 속에 모든 이치 갖추어 있고 / 누구나 쉬 배우며 쓰기 편하니 / 세계의 글자 중에 으뜸이도다 / 한글은 우리 자랑 민주의 근본 / 이 글로 이 나라의 힘을 기르자”

외솔 최현배가 작사한 한글날 노래 2절 가사이다. 세종대왕의 과학·철학·애민의 탁월한 정신이 오롯이 담긴 세계 최고의 글자, 쓰기 쉬우면서도 모양 또한 아름다운 글자가 한글이다. 유네스코는 문맹퇴치에 공이 큰 단체나 개인에게 주는 상으로 ‘유네스코 세종대왕 문해상’을 1989년에 제정하였다. 인도네시아의 글자가 없었던 부족인 찌아찌아족은 2009년부터 그들의 말을 적는 글자로 한글을 가져다 쓰고 있다. 한글의 과학성, 우수성을 보여주는 두 장면이라 하겠다.

서울 한복판 세종로에 광화문이 서 있다. 경복궁으로 들어가는 정문이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명소이다. 대한민국의 얼굴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1395년 왕궁이 처음 지어지던 때의 이름은 ‘오문(午門)’이었는데, 세종대왕이 집현전에 왕명을 내려 새로 만든 이름이 ‘광화문(光化門)’이다.

광화문은 우리 역사와 길을 같이 걷는다. 임진왜란 때 경복궁과 함께 소실되었다가 조선 후기 고종 때에 궁을 중건하면서 문도 재건되었다. 경복궁에 조선총독부 청사를 지은 일제에 의해 광화문은 경복궁의 동문인 건춘문 자리로 옮겨졌다가 1968년, 2010년 두 차례의 재건축 과정을 거쳐 원래 자리인 지금 위치로 돌아왔다.

광화문의 현판은 광복 이후 3번 교체되었다. 고종 때 경복궁의 중건 책임을 맡은 훈련대장 임태영이 쓴 한자 ‘門化光’으로 현판이 걸렸다가, 1968년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글씨 ‘광화문’으로 현판이 바뀌었고, 2010년 복원된 광화문에 임태영의 글씨를 복원한 한자 현판 ‘門化光’으로 되돌아갔다. 그러나 2010년 복원 당시 고증의 오류와 현재 현판의 균열로 인해 문화재청은 현판을 다시 제작하기로 결정하였다.

2011년 문화재청이 5천 명의 성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현판 글씨로 한글(58.7%)을 한자(41.3%)보다 선호한다는 답을 얻었다. 하지만 문화재 전문가들의 공청회와 토론회에서는 한자 현판이 우세했고, 임태영의 한자 현판으로 최종 결정이 났다. 광복 이후 4번째 광화문 현판은 올해 걸기로 예정되어 있지만, 아직 소식이 없다.

지난 5월 ‘광화문 현판 훈민정음체로 시민모임’(공동대표 강병인·한재준)이 만들어졌다. 나는 광화문 현판을 글자체가 우아하고 아름다운 훈민정음체로 하자는 이 모임을 지지한다.

우리의 정체성을 무엇으로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의 얼굴이라 할 광화문의 현판을 한자로 적는 것이 과연 바람직할까? 문화재는 옛것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타당할지 모르겠으나, 문화는 옛것의 답습으로는 발전할 수 없다.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문화의 대표성을 생각할 때 한자 현판 ‘門化光’보다 ‘광화문’이 훨씬 더 어울리지 않을까? 세종대왕이 지은 이름 ‘광화문’을 세종대왕이 만든 훈민정음체로 쓰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

마음 같아서는 한자 뜻을 확 풀어 아예 ‘빛들문’으로 바꾸자고 하고 싶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