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희씨의 텃밭에서 나온 호박.

남편이 퇴직한지 9개월째다. 우리는 작은 텃밭을 함께 가꾸며 지낸다. 의기투합할 때도 있지만 가끔씩 서로 마음이 맞지 않아 토닥토닥 다투기도 한다. 둘 다 농사에는 젬병이다 보니 시행착오가 잦다. 기쁨도 주고 실망도 주던 그동안의 우여곡절을 열거하자면 웃픈 사연이 많다.

지난봄에 수박 모종 몇 포기를 사서 심었다. 모종만 사다 심으면 저절로 크는 줄 알았지만 경험자들은 순지르기를 잘해줘야 한다고 했다. 실한 수박을 위하여 열다섯 번째의 아들 줄기 아래로 순 자르기도 했다. 길고 지루한 장마가 계속되었다. 흔히 볼 수 있는 수박과는 다른 검은 달덩이 같은 수박 하나가 달렸다. 검은빛 수박은 크고 튼실해 보였다. 그러나 막상 쪼개보니 속이 노란 것이 덜 익은 것인지 맛이 무맛이었다. 아까워서 껍질을 벗기고 속을 발라 장아찌를 담아보니 상큼하니 맛있었다.

다른 한 포기에서는 약간 다른 잎과 줄기가 튼튼하게 뻗어나가고 있었다. 급기야는 오이 줄기를 침범해서 처음부터 제집이었던 양 타고 올라갔다. 분명히 수박 모종을 심었는데 출신을 알 수 없는 한 포기의 수박(?)은 곱고 하얀 꽃을 피웠다. 꽃이 떨어지자 호박을 닮은 것도 같고, 토종 오이를 닮은 것 같기도 한 것이 달렸다. 궁금해하던 우리에게 이웃 텃밭 아주머니가 식용 박이라고 했다. 박나물을 해먹으면 맛있다고 덧붙였다. 제일 큰 녀석을 나누어 주었다. 다른 하나는 남편의 지인에게 나누어 주었다. 생각지도 못한 수확으로 여러 사람이 입 호강을 했다.

10호 태풍 하이선이 달려오던 날이 엄마의 첫 제사였다. 엄마가 박나물 좋아하시던 생각이 나서 하나는 친정으로 가져갔다. 태풍 때문에 못 온다고 생각했던 우리가 도착하니 모두 놀랐다. 거의 제사장만이 끝나가던 시간인데 올케언니는 완성된 무나물을 빼고 엄마의 막내딸이 가져온 박나물을 해서 올렸다. 비록 수박 모종에서 엉뚱하게 나왔지만 생전에 엄마가 좋아하시던 박나물로 올렸으니 왠지 뿌듯했다. 엄마는 태풍을 뚫고 오셔서 박나물을 맛있게 드셨을까? 술잔을 올리고 절을 하고 마음으로 기도했다. 그곳에서 아버지랑 편안하시라고, 우리는 모두 잘 있다고.

태풍이 지나간 늦은 밤, 엄마를 가랑비 오는 대문 밖까지 배웅하고 들어오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김은희(포항시 남구 대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