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기 좋게 발라낸 보리굴비.
먹기 좋게 발라낸 보리굴비.

맥문동이 한창인 황성공원을 거닐었다. 지인이 특별히 이 계절에 보라색 향연이 펼쳐진 곳으로 나를 초대한 것이다. 든든한 소나무 사이사이 맥문동은 그야말로 환상이었다. 더위도 잊을 만큼 즐거웠기에 한정식 한상을 대접하기로 했다. 보리굴비가 진수성찬 제일 가운데 놓였다. 이 계절에 가장 좋은 반찬이다.

날씨도 무덥고, 습한 날씨가 계속되니 입맛도 없다. 가족들 밥해 먹이는 게 어느 때 보다도 힘이 드는 계절이다. 어릴 때 어머니가 해 주시던 보리굴비에 콤콤한 비린내가 그리워지는 계절, 보리굴비를 손질해서 맛나게 먹여야 겠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조상님들의 지혜였다. 싱싱한 조기를 보리겨 속에 오랜 기간 동안 숙성시켜 두고두고 먹을 수 있게 했다. 그러면 굴비는 엄청 딱딱하고 수분이 거의 없는 상태가 된다. 이 상태로는 먹을 수 없는데 미지근한 쌀뜨물에 녹차 잎 몇 줌을 넣고 굴비를 넣고 2~3시간 우려 주면 특유의 콤콤함과 비린내가 거의 사라진다.

이때 비늘은 긁어주고 가시와 지느러미, 꼬리는 잘라준다. 찜기에 20~25분 중불로 쪄내 주면 먹기에 알맞은 상태가 된다. 일일이 살을 발라 고추장과 버무려 주면 고추장 굴비가 된다. 한 마리씩 호일에 싸서 딤채에 보관해 두고 먹을 때 마다 약한 불에 뚜껑 닫고 데워 먹거나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으면 된다. 이때 더 맛나게 먹는 방법은, 녹차를 우려내 차가운 얼음을 띄워 그 물에 밥을 만다. 함께 먹으면 보리굴비를 처음 접한 분들도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다. 귀한 음식이라 자주 먹지는 못했지만 어머니가 정성스레 발라서 자식들 밥숟가락에 얹어 주시던 모습이 그리워진다. 정작 본인은 자식들이 먹고 남은 것만 발라 드셨는데, 그때는 왜 몰랐을까?

부쩍 입맛이 없어하는 부모님, 이번 주는 더 늦기 전 보리굴비 손질해 찾아뵙고 싶다. 이젠 어머니 밥숟가락에 내가 발라낸 보리굴비 다정하게 올려 주고 싶다. /이소영(경주시 천북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