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희<br>인문글쓰기 강사·작가<br>
유영희
인문글쓰기 강사·작가

당나라 때 문인 한유는 율량 현위로 떠나는 지인 맹동야를 전송하는 글 ‘송맹동야서’에서 ‘만물은 평정을 잃으면 소리를 낸다.’고 했다. 이 글에서 한유는 초목은 바람이 불면 흔들리며 소리를 내고 쇠나 돌은 두드리면 소리를 내는 것은 모두 원래의 평정한 상태가 깨졌기 때문이라면서, 사람이 말을 하거나 노래를 하는 것도 마음이 평정을 잃어 어쩔 수 없이 나오는 것이라고 한다.

올해 여름은 유난히 소리를 내고 싶을 정도로 흔들리는 일이 많다. 큰 사건 두 가지를 꼽자면, 하나는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 선생님의 죽음이고 다른 하나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죽음이다. 김종철 선생님은 삶의 기준을 찾지 못해 흔들릴 때 중심을 잡는 데 큰 도움이 된 분이다. 1991년 어느 날 신문에서 김종철 선생님이 쓴 칼럼을 보고 녹색평론을 구독하면서 이웃과 녹색평론 읽기 모임을 만들고 한살림 생협 활동까지 시작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개인적 인연은 없으나 그의 죽음은 우리 사회에 너무나 큰 숙제를 안겨준 사건이라는 점에서 마음이 흔들린다. 죽음 자체 때문이라기보다 죽음을 둘러싸고 사회 구성원들의 거친 소리에 마음이 더 흔들린다.

자연물은 흔들리는 대로 소리를 내지만, 사람은 마음이 흔들리는 그대로 소리를 내지 않는다. 때로는 애써 소리 내지 않기도 한다. 김종철 선생님의 죽음에는 지금 나의 삶을 들여다봐야 하는 부담감 때문에, 박원순 서울시장의 죽음에는 감정의 과잉 때문에 소리 내기가 어렵다. 평정을 잃고 내는 소리가 모두 아름다울 수는 없다. SNS에 쓰는 글들은 즉흥적이어서 특히 그렇다. 발끈해서 쓴 내 글 역시 사람들을 흥분시킨다는 것을 깨닫고 얼른 지우기도 한다.

한유는 음악이란 마음이 답답할 때 소리 잘 내는 재료로 내는 소리이며, 아름다운 문장이란 소리를 잘 내는 사람이 쓴 글이라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아름다움은 미학적 의미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진정성, 도덕성, 책임감, 시의성 여러 요소가 있을 것이다. 내 글이 고전이 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기왕 소리를 낼 바에는 아름다운 소리를 내면 좋겠다. 문제는, 아름다운 문장이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문장을 아름답다고 할 수는 없다. 인기가 아름다움의 기준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한유 역시 아름다운 글은 인기 있는 글이 아니라고 하면서 선한 사람이 좋아하고 선하지 않은 사람이 싫어하는 문장을 아름답다고 한다. 그러나 이 말은 순환론에 빠진다. 선하다는 기준도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아름다운 문장이 무엇인지 똑부러지게 말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수백 수천 년 이어지는 고전이 있는 것을 보면 분명히 있기는 있을 것이다.

만물은 평정을 잃으면 소리를 낸다. 그러나 사람은 평정을 잃었을 때 아름다운 소리를 내기 위해 노력하는 존재다. 마음을 심하게 흔드는 큰일일수록 더 아름다운 소리를 내고 싶다. 아름다운 소리만이 평정을 되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