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청하 관송전. 소나무산책로는 주민들에게도 개방해놓았다.

“유월 하루를 버스에 흔들리며/동해로 갔다//선을 보러가는 길에/날리는 머리카락//청하라는 마을에 천희(千姬)/뭍에 오른 인어는 아직도 가만히 머리카락이 젖어있었다(중략)//지금도 청하라는 마을에는 인어가 살고 있다”(박목월 시인의 ‘청하’ 중에서)

산천이 푸른 여름이다. 목월이 어느 해 유월 고향 경주 모량에서 비포장길 덜컹대는 버스를 타고 포항 청하로 천희와 맞선을 보러 왔던 사연을 시로 썼다. 인어가 살고 있다는 청하는 푸른 산, 맑은 물의 고장이라는 이름처럼 바다 같은 푸른 숲을 간직하고 있어서 그 곳에 머리카락 젖은 인어가 유유히 유영할 듯하다.

여러 개의 숲이 있지만 그 중에 관송전을 찾았다. 은행나무 가로수를 따라 들어가니 청하중학교가 나타났다. 해질 무렵이라 학생들이 하교한 후의 교정은 솔바람만 서성일 뿐이었다. 목월의 인어가 어디쯤 숨어있을까 싶어 숲을 기웃거렸다. 소나무 사이로 산책로를 만들어 놓아서 천천히 소나무향을 맡으며 삼림욕을 즐기기에 좋았다. 관송전은 관덕관송전(觀德官松田)의 준말로 솔밭을 의미한다. 조선 세종 때 청하 현감으로 부임한 민인(閔寅)이라는 사람이 바람을 막고, 홍수에 대비하며 관에서 쓰는 목재 조달에 쓰려고 조성했다. 오랜 세월 큰 기여를 했던 숲은 지금의 장관을 연출하기까지 시련도 겪어야 했다. 연산군, 선조, 고종 때 이곳에 부임한 탐관오리가 자신의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 나무를 함부로 벌채해 숲을 훼손시킨 기록이 남아있다. 세상이 어수선할 시절에는 꼭 소나무가 수난을 당했던 것이다. 백성들과 소나무가 똑같이 어려움을 겪었다는 게 우리 민족이 소나무를 특별히 사랑하는 이유 같아서 가슴이 아렸다.

원래 이 숲의 동북쪽에 활쏘기 훈련장이 있었다고 하는데 무술로서가 아닌 덕을 품고 과녁을 봐야 한다는 의미를 살려 관덕(觀德)이라 하고, 관송전(官松田)은 이름 그대로 관 소유의 솔밭이라는 뜻이다.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치면서 벌채되거나 개간돼 약 10㏊에 달하였던 숲이 현재는 0.8㏊에 500여 그루만 남아 있는 상황이다. 불과 수십 년 전만 하더라도 지금보다 숲이 훨씬 넓었다고 하며 현재 학교 주변으로 들어선 건물위치도 전부 숲이었다고 한다.

이 숲은 청하중학교를 품는 형상으로 마치 학생들을 감싸 안은 어버이 품처럼 이들에게 맑은 기운을 주기에 충분하다. 청하중학교의 소나무 수령은 80~200년 가까이 된다. 교실 앞에 철쭉은 내 키보다 크게 자랐고, 감나무에 감꽃이 애기손톱만해서 감이 열리면 어떤 크기일지 궁금했다. 여름은 수국의 계절이라고 수줍게 주장하듯이 산수국 여러 그루가 식당 앞에 얌전히 앉았다. 그 외에도 이팝나무, 층층나무, 멀구슬나무, 모감주나무, 벽오동나무 등속의 나무들이 산책로를 따라 길을 안내하고 섬초롱, 금낭화, 참나리, 구절초, 쑥부쟁이, 해국 등 40여 종의 야생화가 150평 규모의 꽃동산을 장식하고 있어서 학생들과 함께 어우러져 계절마다 다른 빛깔의 숲을 보여준다.

김순희<br>​​​​​​​수필가
김순희
수필가

청하중학교와 기청산 식물원은 서로 이웃하고 있다. 식물원 주차장과 맞닿은 곳에는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동상이 세워졌다. 생각 없이 숲을 훼손한 결과가 어떨지 생각해 보라고 웅변하는 듯하다.

예부터 어른들은 큰 나무 밑에 큰 나무가 자라니 우리 땅 곳곳의 노거수는 반드시 지키고 보존해야 한다고 했다. 참 다행인 것은 거대한 숲을 우리의 후손들에게 물러주어야 한다며 관송교육재단이 숲을 인수해 이곳을 잘 보전하고 있어서, 2000년도에는 이 숲이 제1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학교 숲 부문 대상의 영예를 차지하기도 했다.

숲은 사람에게 좋은 기운을 미친다. 시인에게 시향을 떠오르게 하고, 젊은이에게는 꿈을 키우게 만든다. 숲(林)이란 한자어를 보면 나무 두 그루가 손을 잡고 섰다. 한 그루 한 그루씩 심어서 숲을 이루라는 천명 같다. 우리가 이룬 그 숲에 인어가 오래 머무를 수 있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