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희<br>인문글쓰기 강사·작가<br>
유영희
인문글쓰기 강사·작가

요즘 연예인을 꿈꾸는 아이들이 많다. 예전에는 대통령이었는데,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그러나 연예인이든 대통령이든 모두 주목받는 사람들이니, 예나 이제나 특별해지고 싶은 소망은 변함없는 듯하다. 오죽하면 ‘텔레비젼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라는 동요까지 있을까.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그런 사람이 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아간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 소망도 사그라진다. 이제 흔해빠진 평범한 삶이 우리 앞에 놓여있다. 작가 필립 로스는 그의 소설 ‘에브리맨’에서 그런 흔해빠진 인물을 그려낸다.

‘에브리맨’의 주인공 그웬은 결혼하고, 직장 다니고, 나이 들어서는 병원에 자주 다니는 남자다. 그러나 세 번의 결혼은 모두 이혼으로 끝난다. 고등학교 때부터 그림을 그리고 싶었지만 생활을 책임져야 해서 직장에 다니며 꿈을 미룬다. 생애 마지막 7년 동안은 매년 병원에 입원하다가 결국 수술실에서 깨어나지 못한다.

무슨 업적을 남긴 것도 아니고, 큰돈을 번 것도 아니고, 그저 그런 그웬의 삶은 우리의 삶과 너무나 비슷하다. 이런 상황과 감정들은 누구나 겪을 법한 것들이다. 아무리 너그럽게 생각해도 이런 삶을 꿈꾸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평범한 것, 흔해빠진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가는 그런 흔해빠진 것이 가슴을 아리게 하고 각인된다고 한다.

그웬은 세 여자와 이혼하면서 가족들에게 상처는 많이 주었지만, 이혼 후 양육비는 꼬박꼬박 보낸다. 늙어서는 딸 낸시의 쌍둥이를 돌봐준다는 명분을 내세워 자기 집 근처로 이사 오기를 바라는 소심한 사람이다. 은퇴 후 그토록 원하던 이젤 앞에 섰을 때는 눈물을 흘릴 만큼 그림에 대한 열정이 많다. 주 1회 그림 교실을 열어 같이 늙어가는 이웃과 교류한다. 이런 일들은 정말 특별하다고는 할 수 없는 평범한 일들이다. 현실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니, 그냥 버티고 서서 오는 대로 받아들이라는 주인공의 말이 그의 삶을 대변해주는 것 같기도 하다.

죽음 역시 피하고 싶지만 어쩔 수 없다. 그웬은 큰 수술을 앞두고 가족 공동무덤에 찾아가 무덤 파는 남자와 이야기를 나눈다. 그 남자는 무덤 파는 과정을 자세히 설명해주면서 침대를 놓아도 될 만큼 평평하게 해야 하고, 뛰어내리고 싶을 만큼 멋있어 보여야 한단다. 그웬은 나이 든 사람에게 좋은 공부가 되었다며 고마워한다. 이 말이 그웬에게 안정을 주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어 하고, 그렇게 되지 못했을 때 자책하고 실망한다. 나 역시 중고등학교 시절 위인전을 읽으며 모름지기 역사에 남을 만한 업적을 남겨야 의미 있는 삶이라고 생각했던 탓인지, 가끔은 삶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야 할지 난감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아간 사람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연이 있고, 열정이 있고, 선택이 있다. ‘무슨 부귀영화를 보려고’라는 말이 있다. 부귀영화만이 삶의 의미는 아니다. 평범함 속에서 조금씩 자신을 만들고 확인해나가는 것만으로도 인생은 살 만한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