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새로운 길과의 조우

환동해와 유럽을 잇는 ‘새로운 길’이 포항에서 곧 열린다. 사진은 영일만항에 정박한 네오 로만티카 호.

포항이 환동해와 유럽을 잇는 관광과 인적·물적 교류의 시발점으로 주목받고 있다. 앞으로 영일만항은 포항시를 출발해 아시아 동쪽 끝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유럽 대륙의 끝자락 포르투갈까지 가는 육로 여행의 출발지가 될 것이다. 바로 그 길을 오토바이 타고 완주한 조경국이 본지 연재기사를 통해 ‘새로운 길과 만난 유라시아 횡단 여행자’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선보인다. 왕복 38000km. 지구 둘레에 맞먹는 그 먼 거리를 함께 달릴 독자 여러분들의 관심과 애정을 기대한다.

 

바다 위 작은 도시 구현한 ‘네오 로만티카 호’
여행객 위한 공연장·수영장과 사우나까지…
오토바이 횡단 때의 두려움은 눈 녹듯 사라져
포항은 한반도와 유라시아 잇는 유일한 접점
남북의 길까지 열리면 세계 중심도 꿈꿔 볼만

◇ 네오 로만티카 호 타고 다시 블라디보스토크로

앞으로 몇 년 동안은 블라디보스토크에 갈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포항 영일만항에 정박한 크루즈 네오 로만티카 호를 보고서야 블라디보스토크에 다시 간다는 사실이 실감났다. 선체 길이만 249미터, 배수량 5만7천 톤, 1천800명의 승객과 600명의 승무원이 탈 수 있는 네오 로만티카 호는 모든 시설이 갖춰진 바다 위 작은 도시였다. 솔직히 이렇게 큰 배를 타 본 적은 없었다.

이전까지 동해와 블라디보스토크, 부산과 시모노세키, 여수와 제주도를 잇는 그리 크지 않은 페리를 승선한 경험이 전부니 네오 로만티카 호에 오르기 전부터 기대가 컸다. 어둠이 내린 영일만항에 닻을 내리고 선내에 불을 환하게 밝힌 네오 로만티카 호의 위용은 대단했지만 “크루즈 중에서는 중간급”에 속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도 모르게 “그래요?”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얼마나 큰 배가 있다는 건가.

 

크루즈선에선 매 시간 여러 장소에서 승객이 즐길 수 있는 공연과 행사가 열린다.
크루즈선에선 매 시간 여러 장소에서 승객이 즐길 수 있는 공연과 행사가 열린다.

현재 운항 중인 세계에서 가장 큰 크루즈는 로얄 캐리비안 사의 ‘심포니 호’, 선체 길이가 324미터, 배수량 23만 톤이다. 우리가 잘 아는 타이타닉 호의 선체 길이는 270미터였다. 타이타닉이 건조된 건 이미 100년 전이니 그 사이 더 크고 화려한 배를 타고 여행하려는 인간의 욕망이 끊임없이 선박 건조 기술을 발전시킨 셈이다.

네오 로만티카 호의 선사는 이탈리아 제노바에 본사를 둔 코스타 사다. 네오 로만티카 호까지 포함해 모두 15척의 크루즈를 운영 중이다. 1854년 문을 연 해운회사니 그 역사가 깊다. 이렇게 오랜 세월 자신의 업을 지킨 회사를 보면 비결이 무얼까 궁금하다. 작은 헌책방을 7년차 겨우겨우 버티며 꾸리고 있는 자영업자의 처지에선 165년은 실감나지 않는 연력이다.

부둣가에서 간단한 승선 환영식이 열리는 걸 보곤 배에 올라 카드를 받았다. 객실을 출입하고 신용카드 대신 물건을 구입하거나 음료를 주문할 때 사용할 카드였다. 그리고 배정받은 객실을 찾았다. 11층까지 객실, 공연장, 레스토랑, 사우나, 수영장 등 승객을 위한 시설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객실이 있는 7층에 내리고서도 방을 찾기 위해 긴 복도를 걸어가야 했다. 바다가 보이는 깨끗한 방에 들어서고야 크루즈 승객이라는 실감이 났다. 크기는 작지만 여느 호텔 객실과 다르지 않았다. TV는 물론이고 냉장고, 화장실까지 갖추었다. 항해 중에도 배가 워낙 커선지 흔들림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예민한 승객들은 뱃멀미를 했다. 블라디보스토크를 오가는 동안 바다에 떠있다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조용하고 편안했다.

 

블라디보스토크로 출항하기 전 열린 기념행사. 이철우 경북도지사, 이강덕 포항시장 등이 함께 했다.
블라디보스토크로 출항하기 전 열린 기념행사. 이철우 경북도지사, 이강덕 포항시장 등이 함께 했다.

◇ 포항, 환동해 크루즈 관광의 중심지를 꿈꾸다

포항에서 크루즈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로 떠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유라시아 횡단을 떠나던 날의 설렘이 다시 밀려왔다. 물론 지난 5월에 떠날 때는 지금의 호사와는 거리가 멀었다.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오토바이 오버랜더(대륙횡단여행자)가 선택할 수 있는 수단과 차림이란 저렴하고 남루한 것이니. 크루즈가 있다 해도 탈 생각은 못했을 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비행기를 제외하고 블라디보스토크로 갈 수 있는 방법은 동해항에서 떠나는 페리 밖에 없었다. 적어도 3개월 전에는 예약해야만 오토바이를 선적할 수 있었다. 떠나는 날까지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오가는 사람과 물량이 적으니 일주일에 한 번 출발했고 그나마도 얼마 전 선사의 사정으로 휴항 중이다. 북한과 땅이 맞닿아 있지만 섬나라나 마찬가지인 우리에게 대륙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은 결국 비행기와 배 밖에 없다. 저렴한 비용으로 물류를 이동하기 위해선 철도와 도로가 연결되어야지만 북한과 관계가 좋아지지 않는 한 기약할 수 없으니 바다를 통하는 것이 최선이다.

현재로선 포항이 한반도와 유라시아를 잇는 유일한 접점이다. 이 접점은 오가는 사람과 물건이 늘어날수록 더 큰 힘을 낼 것이다. 포항에서 출발하는 크루즈 여행이 성공을 거두려면 블라디보스토크만이 아니라 금강산, 일본의 삿포로나 니가타를 연결하는 항로를 만들어야 할 테다. 아무리 배 안에서 즐길거리가 많다 해도 항구에 정박해 여행할 수 있는 곳이 한 곳 뿐이라면 크루즈 여행의 매력은 반감될 수밖에 없다. 만약 포항에서 출발해 금강산, 블라디보스토크, 삿포로를 여행하는 일주일 코스라면 충분히 승산이 있지 않을까. 우리뿐만 아니라 러시아, 일본 관광객까지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다. 포항시가 앞장서 크루즈 시범 운항을 시작한 이유는 미래를 위해 포항을 환동해 거점, 해양관광도시로 만들기 위한 것이다. 사람과 물류가 자유로이 오갈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이번 시범운항은 큰 디딤돌을 놓은 것이라 생각한다. 출항 전 환영행사에서 이강덕 포항시장은 “이번 출항을 계기로 일본, 중국, 러시아, 북한 등 환동해 국가와 도시간 교류가 확대되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포항시의 계획이 성공하려면 단순히 포항시뿐만 아니라 경북도와 정부가 나서서 지원해야 한다. 유라시아로 향하는 뱃길을 만들고 외연을 넓히는 일은 국가 경쟁력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우리가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끝에 자리 잡은 한반도, 거기다 남북으로 분단된 작은 나라에서 살고 있다는 건 싫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다. 경제와 문화가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고 해도 강대국 사이에서 눈치를 봐야하는 지정학적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이건 변하지 않는 현실이고 끊임없이 하늘과 바다에 길을 내어야하는 처지다. 언젠가 통일이 되어 남북도 자유로이 오갈 수 있겠지만 그 전에 모든 가능성을 열고 길을 만들어야 한다. ‘유라시아 역사 기행’(민음사, 2015)의 저자 강인욱 교수(경희대학교 사학과)는 그의 책에서 “한국은 태평양으로 나아가는 바닷길의 중심이자 유라시아 대륙으로 향하는 출발점”이라며 “자고로 한반도는 이러한 지정학적 조건으로 북방의 이웃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하며 유라시아 역사의 일부를 이루었다”고 설명했다. 우리에게 바닷길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의 책 내용을 일부 옮긴다. 그의 주장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

20세기 한국의 문화 역량은 대개 서구 문물을 받아들여 재창조하는 것으로 ‘한반도와 바다’의 교류에 기반한 것이었다. 21세기가 되면서 그 교류의 길은 ‘유라시아 대륙-한반도-바닷길’로 넓어지고 있다. 장차 시베리아 철도가 이어지고 남북의 길이 트인다면 한국은 바다와 유라시아 대륙을 잇는 교류의 중심지가 될 수 있다.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크루즈를 띄운 포항은 이제 ‘교류의 중심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은 셈이다. 옛 신라의 황금시대는 먼 이민족들과의 교류로 열렸다. 경주와 가까웠던 포항이 그들과 물물교환 하던 항구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역사는 항상 되풀이 되고 또 진보한다. 평화와 번영은 문을 열고 길을 만들어야 찾을 수 있다.

 

크루즈선에선 매 시간 여러 장소에서 승객이 즐길 수 있는 공연과 행사가 열린다.
크루즈선에선 매 시간 여러 장소에서 승객이 즐길 수 있는 공연과 행사가 열린다.

◇ 크루즈 여행의 재미… 다양한 볼거리와 편안한 쉼

32시간, 포항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크루즈를 타고 가는 시간이다. 그 시간이 지루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흥겨운 이벤트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객실로 배달되어 오는 뉴스레터를 보면 매 시간마다 열리는 이벤트와 공연이 빼곡하게 소개되어 있다. 부지런하기만 하면 심심할 틈이 없다. 여유가 있다면 이런 여행을 마다할 사람이 어딨겠나 싶다.

3년 전 유라시아 횡단을 떠나겠다 결심하고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우기 전까진 블라디보스토크는 한 번도 가보고 싶다는 생각조차 가진 적이 없는 곳이었다. 3년 사이 블라디보스토크는 ‘핫한 여행지’로 떠올랐고, 최근 우리와 일본 사이가 틀어지며 대체 여행지로 각광받고 있다. 그래선지 모르겠지만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할 때도 돌아올 때도 한국 관광객을 쉽게 거리에서 숙소에서 만날 수 있었다. 아시아 동쪽 끝자락에 있으되 유럽의 풍경을 가진 블라디보스토크는 우리가 차량(오토바이든 자동차든)을 이용해 육로로 유럽을 갈 수 있는 유일한 기점이다. 오토바이를 배에 태우고 블라디보스토크에 내려 통관을 마칠 때까지 기다리는 수고는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가 없다. 오죽했으면 블라디보스토크 세관에서 오토바이를 받을 때 여행자(6명이 같은 날 유라시아 횡단 여행을 시작했다)들 모두 “여행하기도 전에 지칠 지경”이라고 푸념했을 정도였으니까. 시작부터 고생이었다. 고생은 여행이 끝나면 항상 부풀려지는 법이지만 많은 유라시아 횡단 여행자들이 집에서 출발해 배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해 다시 시동을 걸 때까지가 가장 힘든 기간이었다고 고백했으니, 이건 분명 사실이다. 긴 여행을 떠나기 전 스멀거리며 올라오는 두려움과 긴장감은 쉽게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

그렇게 두려움과 긴장감을 안고 도착했던 블라디보스토크를 이렇게 편안하게 크루즈를 타고 다시 여행할 줄은 정말 몰랐다.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할 때까지 배 안에서 편안하게 즐기며 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몇 개월 전의 고생했던 기억이 눈 녹듯 사라졌으니까.

경남 진주에서 ‘소소책방’을 운영하는 조경국은 1974년 태어났다. 대학에선 국제관계학을 공부했고, 몇몇 직장을 옮겨 다니며 기자와 편집기획자로 근무했다. 오토바이를 타고 낯선 도시의 바람과 만나는 걸 좋아하는 낭만주의자이기도 하다. 한겨레신문 등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했으며, ‘오토바이로 일본 책방’ ‘필사의 기초’ ‘책 정리하는 법’ 등의 저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