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개국 38,000킬로미터를 달려 집으로118일(2019년 5월 10일-8월 30일) 동안 38,000킬로미터를 달려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러시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폴란드-체코-오스트리아-이탈리아-프랑스-스페인-포르투갈-벨기에-네덜란드-독일-덴마크-스웨덴-노르웨이-핀란드-에스토니아(18개국)를 돌아 다시 러시아를 지나왔다. 오랫동안 꿈꾸었던 여행을 끝내고 돌아왔지만 딱히 일상이 달라진 것은 없었다. 생업을 뒷전에 두고 다녀왔으니 여행을 떠나기 전보다 더 고단하게 밥벌이를 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하지만 한 번도 떠난 걸
◇ 다시 시베리아를 달리다모스크바를 떠나 처음 왔던 길을 그대로 되돌아가야 한다. 오토바이든 차든 유라시아 횡단 여행을 떠났던 이들은 다시 러시아로 돌아오지 않는다. 시베리아를 지나는 고생을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이유가 가장 크고, 그 시간 동안 유럽에서 머무르며 여행하는 게 훨씬 합리적인 선택이기 때문이다.처음 유라시아 횡단 여행을 계획했을 때도 여느 여행자와 마찬가지로 유럽의 최서단 포르투갈 호카곶까지 갔다가 스페인에서 오토바이를 배로 보내고 여유롭게 파리나 베를린 같은 유럽의 대도시에 가서 지내다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돌아
◇ 네바 강에서 펼쳐지는 러시아 해군의 관함식상트 페트르부르크 거리마다 군인들로 넘쳤다. 한눈에 봐도 해군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특이한 건 러시아 해군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군인들도 많았는데, 이렇게 해군들이 많은 이유를 함께 방을 쓰는 친구가 알려주었다. 매년 7월 마지막 주 일요일에 러시아 해군 창설 기념 관함식과 축제를 하기 때문에 러시아 해군뿐만 아니라 러시아와 우호관계에 있는 다른 나라 군인들도 많은 거라고. 겨울 궁전이 바로 보이는 네바 강변에는 여러 척의 군함과 잠수함까지 도열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평일부터 그 광
◇ 러시아 국경을 넘어 상트 페테르부르크로드디어 러시아로 들어왔다. 꽤나 더운 날씨였는데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들어와선 대차게 내리는 소나기를 피할 겨를도 없이 맞았다. 탈린에서 비 때문에 하루 더 쉰 보람이 허무하게 날아가 버렸다. 볕에 뽀송뽀송하게 말렸던 부츠도 슈트도 다시 물에 젖어버렸다. 말짱 도루묵!탈린에서 러시아로 넘어가려면 나바르라는 작은 국경도시를 지나야 한다. 그냥 국경 검문소를 통과하면 될 줄 알았는데 특이하게도 검문소에서 2.5킬로미터 떨어진 차량 대기소에 가서 통과요금(2.5유로)을 내고 영수증과 접수증을 받아
◇ 구글맵 안내를 무시한 걸 후회하다로시 데려와서 일본 일주를 다녀온 지가 4년이 지났다. 매년 하고 싶은 일 세 가지를 정하고 그것만은 좌고우면하지 않기로 결심한 것도 7년이 지났다. 이제 돌아가면 올해 마지막 버킷 리스트(책방 이사)를 마무리해야 한다. 불혹이 지나며 그 이전보다 시간의 속도가 더 빨라졌다는 걸 실감한다.세계에서 가장 많은 정보를 가진 집단은 아마 구글이 아닐까. 숙소에서 나와 시내로 들어가려고 구글맵을 열고 경로를 검색하니 빠른 길이 아닌 다른 길을 알려 준다. 무시하고 어제 왔던 빠른 길로 나가니 경찰이 통제
◇ 오슬로에서 마주친 난민들오슬로 시내에 나갔다가 온가족이(난민인 듯했다) 구걸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들 대부분은 여성과 아이들이었다. 어디서나 여성과 아이들은 가난이나 차별 앞에 가장 약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북아프리카와 중동에서 유럽으로 넘어오는 난민들이 계속 증가하고 유럽 대부분 국가들은 그들로 인해 갈등이 생기고, 반난민 정서가 확산되고 있다. 유럽 내 극우정당들은 국민들의 난민 혐오 정서에 기대 세를 불리고 있다.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정세가 안정되지 않는 이상 유럽도 내부적으로 끊임없이 갈등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단
◇ 페리 예약에 실패하다함부르크에 도착하자마자 말뫼로 넘어가는 페리를 예약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페리 예약 사이트에서 카드 결제를 하려니 국내 휴대폰 인증을 받아야 한다. 로밍 신청을 하지 않았으니 당연히 인증을 받을 수가 없다. 항구까지 가서 해결하는 수밖에.북유럽에서 다시 러시아로 들어가려면 두어 번 페리를 이용해야 하는데 예약할 수가 없으니 한참 기다리거나 아예 타지 못할 상황도 염두에 둬야한다.아주 작은 문제가 가끔 이렇게 다음 여정의 발목을 잡을 때가 있다. 함부르크에서 2박 3일, 이제 나머지 일정을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 파리를 떠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그렇게 펄펄 끓던 날씨가 갑자기 초가을 날씨처럼 바뀌었다. 벨기에를 넘어오며 쌀쌀한 바람이 불어 비옷을 껴입었다. 이탈리아부터 프랑스까진 고속도로 통행료를 냈는데 벨기에도 네덜란드도 톨게이트가 따로 없었다.파리에서 릴까지(약 230킬로미터) 통행료가 18.5유로. 파리에서 암스테르담까진 약 540킬로미터다. 팜플로나에서 여기까지 프랑스를 지나오는 동안 정확하진 않지만 통행료로 10만원 훨씬 넘게 쓴 듯하다. 유럽은 각 나라마다 톨게이트를 지날 때 통행료를 내거나 통행증인 비넷을 구입해야 하는 곳
◇ 유럽의 중심 파리에 도착하다주말을 앞둔 금요일에 파리 같은 대도시로 들어가는 건 굳이 예상하지 않아도 고생길이 될 게 뻔하다. 차량 정체는 기본이고 길이 익숙지 않아 갈림길에서 착각해 엉뚱한 곳으로 빠지기라도 하면 난감하다. 그래서 미리 지도를 여러 번 확인하고, 특히 숙소 주변 지리를 머릿속에 넣어두어야 한다. 지금까지 오토바이로 가본 곳 가운데 가장 운전하기 어려웠던 곳은 부산이었고(하필 휴대폰이 없었다), 그 다음은 도쿄였다. 고가도로가 많은 도쿄에선 툭하면 GPS 신호를 잡지 못해 도심을 빠져나오는데 애를 먹었었다. 그
◇ 산티아고 순례자의 종착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알베르게(숙소)에 순례자가 아닌 일반 여행자는 나밖에 없는 듯. 다들 배낭을 침대 맡에 둔 순례자들이다. 야고보의 유해가 안치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 광장에 갔더니 순례를 끝낸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대로 쉬고 있었다. 야고보의 유해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믿기 힘들지만,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니까.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이었던 야고보는 예루살렘에서 순교했고 그의 유해는 신화 속 이야기처럼 발견되어 이곳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으로 옮겨졌다. 이곳으로
◇ 2만2천400㎞, 리스본 도착P에게 연락이 와서 리스본에서 만나기로 했다. P는 나와 반대 방향으로 유럽을 달리는 중. 유라시아 횡단 여행자의 반환점, 혹은 종착점은 포르투갈 리스본에 있는 호카곶이다. 유럽의 가장 서쪽에 있는 그곳에서 횡단여행의 마침표를 찍는 경우가 많다.동해항에서 똑같이 출발하고 돌아가는 일정도 얼추 비슷한데 유럽 일정은 정반대다. 대부분 여행자들은 호카곶에 왔다 스페인에서 배로 오토바이를 한국으로 보내고 비행기로 귀국한다. 다시 오토바이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까지 돌아가는 경우는 많지 않다. 하루 더 쉬었다가
◇ 니스에서 아름다운 소르본느 서점을 만나다고모댁에 지내며 잠시 기록하는 걸 멈췄다. 매일 기록한다는 건 굉장한 인내심과 에너지를 요구하는 것이어서 잠들기 전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써두지 않으면 눈을 감기 힘들었다. 아무리 피곤하고 잠이 쏟아져도 기록하려 노력했던 건 오랜 기간 준비하고 떠나온 이번 여정에 대한 미련 때문이었다. 떠나온 것만으로도 충분하지만 다시 하기 힘든 경험을 제대로 기록하지 않으면 떠나기 위해 고생했던 것들을 보상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여행을 다녀온 후 남는 것은 언제나 일기와 사진뿐이었다.40일 넘게 달
◇ 바르샤바를 떠나 모차르트의 고향 잘츠부르크로오스트리아로 넘어오니 돈의 가치가 달라졌다. 프라하에서 묵었던 디스카운트 프라하 호텔은 2박 요금이 아침밥 포함 15.6유로였다. 6인실 도미토리였지만 부엌이 있어서 끼니를 해결하기도 편했다. 잘츠부르크에선 아예 호스텔을 검색할 수도 없었다. 숙소를 잡을 때 기준은 무료 주차와 최저 가격. 거기에 부엌이 있는 곳이면 무조건 오케이. 짤츠부르크에선 그 기준이 아예 통하지 않았다.결국 시내에서 꽤 떨어진 곳에 숙소를 잡았다. 1인실 조식 포함 50유로. 부킹닷컴 어플로 검색한 최저가. 일반
◇ 바르샤바를 떠나 크라쿠프로바르샤바에서 크라쿠프로 향했다. 비가 온다. 다행히 크라쿠프 숙소에 도착하고서 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내는 나가기 어렵겠다. 오는 길에 잠시 스칼라성에 들렀고 엉뚱한 곳을 숙소로 착각해 헤매기도 했다. 주행 중 문제는 없었다. 이 상태만 유지하면 된다. 로시를 수리하느라 리가와 바르샤바에서 시간과 경비를 예상보다 많이 써버린 탓에 나머지 일정은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포르투갈까지 갔다가 스웨덴, 핀란드로 해서 다시 러시아로 들어가 블라디보스토크로 돌아가는 여정이니 물가가 비싼 곳에선 아쉽지만 체류
◇ 구세주, 페트롤헤드스의 미치아이와 도미니크에바 씨에게 소개받은 ‘패트롤헤드스’에 다녀왔다. 패트롤헤드스는 바르샤바 시내에서 20킬로미터쯤 떨어진 외곽 낡은 창고에 자리잡고 있는데 바로 옆에는 생활폐기물 처리장이 있다. 그냥 버리기 어려운 쓰레기들을 신고하고 와서 처리하는 모양이다.냉각팬은 회생불능 판정을 받았다. 합선으로 모터가 탔다. 왜 합선이 되었는지 이유는 알 수 없다. 교체를 해야만 하는 상황. 지금까진 임시조치해서 타고 왔으나 이제 그럴 수 없다. 부품을 새것으로 바꿔야만 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 라트비아 국립 미술관에 가다엊그제 집을 나온 듯한데 벌써 한 달을 채웠다. 이렇게 오래 돌아다니는 여행은 젊은 시절, 20대에 했었어야. 마음은 있었으나 도저히 그럴 수가 없던 날들이었다. 이렇게 훌쩍 나이를 먹고서도 멀리 떠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운이라 생각한다. 사실 이번 여행이 나의 사십대에 가장 중요한 버킷리스트였다. 지난해 출발하려는 계획이 무위로 돌아가고 바등거리며 다시 떠날 계획을 세운 건 그만큼 ‘유라시아 횡단’이 중요했기 때문이다.지금껏 해보고 싶은 일들 중에 가장 가슴 뛰는 일이었다. 살면서 이것만은 해보고
◇ 수리점을 찾아 헤매고, 부츠를 수선하다오토바이를 가지러 BMW 모토라드에 다녀왔다. 커피 한 잔 얻어 마시고 한 시간쯤 담당자를 기다린 다음에야 찾을 수 있었다. 라트비아 모토라드의 문제점은 미캐닉을 직접 만날 수 없다는 것. “이것은 제외하고 저것만 고쳐달라”고 부탁하는 게 국내라면 가능했을 텐데 철저하게 손님과 미캐닉 사이에 소통은 할 수 없었다. 숙소 직원에게 소개 받은 곳으로 오토바이를 끌고 갔다. 시내 반대편에 수리점이 있어 겸사겸사 리가의 전체적인 풍경도 감상할 수 있었다.옛 건물들과 숲이 잘 보존되어 있는 점은 리가
◇ 러시아에서 마지막 날, 미끄러져 넘어지다러시아에서의 마지막 날 이번 여행도 끝날 뻔 했다. 모두 내가 잘못한 탓이다. 도로에 떨어진 돌을 피하려다 미끄러졌다. 다행히 크게 속도를 내지 않았고 도로에 흙이 깔린 곳에서 넘어졌다. 긴장을 늦추고 있었던 탓이다.나는 다친 곳이 전혀 없었지만 로시는 만신창이. 양쪽 카울과 앞쪽 깜박이등 하나가 깨졌다.더 큰 문제는 헤드라이트와 계기판을 잡아주는 지지대가 부러지고 사이드 박스 하나가 완전히 회생 불능이 된 것이다. 사이드 박스는 폐기처분하고 헤드라이트와 계기판은 덕테이프(덕테이프는 그야말
◇ 시베리아 지나 모스크바에 도착하다드디어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한국을 출발해 모스크바까지 로시로 달린 거리가 11,259킬로미터. 집에서 출발한 지 21일째,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17일이 걸렸다. 춥고 더운 것(도착한 날 모스크바 최고 기온 29도), 그리고 비가 자주 내렸던 걸 제외하면 크게 고생하지 않고 온 듯하다.시베리아 횡단하며 묵었던 숙소나 음식은 가격대비 아주 만족. 뭐 비만 피하고 배만 채울 수 있으면 어디든 뭐든. 혹시나 출발하기 전 겪었던 문제(간헐적 엔진 출력 저하)를 여행 중에 다시 겪으면 어쩌나 걱
◇ 밀밭 나비떼를 뚫고 카잔으로 달리다우파에서 나와 드넓은 들판을 가로질러 달리는데 호분분 호분분했다. 나비들이 얼마나 많은지 노란 꽃잎이 바람 따라 날리는 듯했다. 오토바이를 타지 않았더라면 볼만했겠지만... 참혹한(?) 상황이 이어졌다.나비떼를 뚫고 나오니 오토바이뿐만 아니라 헬멧과 슈트까지 나비 시체로 범벅이 되었다. 본의 아니게 살생하고 업을 쌓았다. 오토바이고 라이딩 기어고 나비가 부딪치고 터지며 묻은 노란 체액으로 비린내가 진동했다. 허물을 벗고 드디어 하늘을 나나 했더니 곧 비참하게 생을 마감해버린 불쌍한 것들. 나비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