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중에 누군가 대문을 두드립니다. “임금의 명령을 전하러 온 사람이오. 임금께서는 당신을 데려오라 하셨소.” 남자는 무슨 일로 임금이 자기를 부르는 지 알 길이 없습니다. 혼자서 궁궐로 갈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밤을 꼬박 새우고 아침 일찍 집을 나섭니다.

남자에게는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가 있습니다. 친구를 설득해 궁궐에 같이 들어가자고 요청합니다. 친구는 안색이 변하며 거절하지요. “미안하네. 약속이 있어서 갈 수가 없네.” 두 번째 친구를 찾아갑니다. “자네 말 대로 함께 가기는 하겠지만, 궁궐 안까지는 어렵겠네.” 실망한 남자는 마지막으로 친구 집을 찾아 문을 두드립니다. “걱정 말게. 자네같이 착한 사람에게 무슨 잘못이 있다고 임금이 벌을 내리시겠는가? 내가 함께 가서 혹시라도 자네가 무슨 오해를 받는 일이 있으면 내가 잘 말씀드리도록 하겠네. 서둘러 궁에 가 보세. 12시까지 도착하려면 빨리 가야 할 것 같네.” 남자는 뛸 듯이 기뻐하며 친구와 함께 대궐로 향합니다.

탈무드에서는 이 이야기를 이렇게 해석합니다. 대문을 두드린 자는 죽음의 사신이지요. 모든 사람은 어느 순간 죽음의 초대를 받는 순간이 온다는 것입니다. 첫째 친구는 재물입니다. 살아 있는 동안 누구나 재물이 가장 진실된 친구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재물은 살아 있는 동안 필요한 것이지 죽을 때는 동행할 수 없는 것을 의미합니다. 둘째 친구는 인맥 또는 가족, 친척입니다. 아무리 가까운 가족과 친척, 지인이라도 죽었을 때 장례식까지만 함께 하지 무덤 속까지 따라올 수는 없다는 것이지요. 마지막 친구는 무엇일까요? 탈무드는 선행이라 말합니다. 착한 행실은 그가 살아있을 때는 별로 보답도 해 주지 않고 빛나게 해 주지 못하지만 죽은 뒤에는 영원히 그와 함께 계속 동행한다는 것이지요.

초등학교 다닐 때 일일일선(一日一善) 즉 하루에 착한 일 한 가지를 하기 숙제가 있었습니다.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제 삶에 강력한 인상을 남긴 숙제였음이 분명합니다. 매일 한 가지 선행을 하기 위해 이리 저리 고심했으니까요. 약한 자들, 결핍 가운데 신음하는 이들, 굶주리고 있는 자들, 소망을 잃고 하루 하루 허무하게 지내는 이들에게 베푸는 우리의 작은 손길과 관심 한 조각이 우리를 살리고 그들을 살립니다. 톨스토이는 말합니다. “선행이 어떠한 목적을 위해 행해진다면, 그것은 이미 선행이 아니다. 목적이 없을 때 비로소 참된 선행이 되는 것이다.”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