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승 원

허리 반쯤 꼬부라진 백발 할머니와

초등학교 6학년짜리 머리 까만 손자가

감 따던 작대기를 내던지자

핏빛으로 타던 황혼이 꺼진다

잎사기들 모두 잃어버린

지신(地神)의 머리털 같은 감나무의 검은

잔가지들 끝에 까치밥 하나

은색 공단 깔아놓은 하늘에 뜬 또 하나의

작가 한승원은 할머니와 손자가 감을 따는 풍경을 따스한 필치로 그려내고 있다. 무서운 속도와 날 선 비정한 현대 문명에 비해 푸근하고 둥근 자연 속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감을 다 따지 않고 까치밥으로 남겨놓는 마음의 넓이와 깊이가 느껴지는 목가적인 시편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