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호의 살며생각하며 (20)

사람들 함께 있는 자리에서 누가 축구보다 야구가 좋다 했다.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나는 말했다. 이런 취향 문제야 간단히 반박해도 누가 뭐라지는 않으니까.

사실 야구는 언제 멀어졌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한화가 대전 팀이라고 해서 깜짝 놀라고 나서 생각하니 그런 것도 같았다. 한화한테 미안하다.

야구도 축구도 열광하는 사람은 못 돼지만 그래도 어느 쪽이냐 하면 축구다. 국내 경기는 잘 안 봐도 월드컵은 보니까 말이다. 옛날에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대전 구장에서 히딩크, 안정환 등등이 이탈리아를 3대2로 꺽을 때 이탈리아 응원팀 바로 옆에서 땀을 쥐고 소리를 질러 보기도 했다. 축구 전용구장의 매력이라는 게 있었다. 선수들이 몰려오면 무슨 말발굽 소리가 나는 것 같고 숨소리도 그랬다.

이 두 주간은 월드컵 보는 재미로 살았다면 살았다. 덥다. 일은 손에 안 잡히고 정치는 벌써 흥이 떨어졌고, 밤 열한 시, 새벽 한 시, 새벽 세 시, 이렇게 건너 건너 재밌게 해주는 바람에 밤잠을 설친다. 지난 밤만 해도 스페인과 러시아, 크로아티아와 덴마크가 연장전까지 가는 혈전을 치르고 승부차기 끝에 환희와 절망의 쌍곡선을 그렸다.

지난밤은 16강 통과한 팀끼리 8강 진출을 놓고 격돌을 벌인 것이었다. 아쉽게도 일본은 16강에 안착했지만 한국은 벌써 탈락해 버렸다. 하지만 이번 러시아 월드컵만큼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한국 축구팀도 많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모두들 그러리라 생각한다. 피파 랭킹 56위 한국팀, 본선에 나갈 때까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했던 팀이 지난 해 우승팀 랭킹 1위 독일팀을 99분을 넘기는 긴 혈투 끝에 2대 0으로 잡아버린 것이다. 그럴리야 없겠지만 심판은 독일 좀 이겨 보라고 전후반 90분에 6분을 더 주고 독일이 한 골을 먹자 3분을 더 주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이 6분, 3분에 오히려 한국이 골을 넣은 것이다.

처음에 스웨덴과의 싸움은 정말 졸전도 그런 졸전이 없었지만 멕시코부터는 한국팀은 달라졌다. 너무나 위축되고 전략이고 전술이고 아무 것도 없어 보였던 스웨덴 전과 멕시코 전은 달랐다. 비록 2대 0으로 졌지만 열심히 했다고 다독거려 주고 싶었다. 그래도 그것으로 16강은 물건너 간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고 나서 독일전이었다.

감동이 컸다. 선수들은 죽을 힘을 다해 싸운 것이었다. 사실을 말한다면 나는 이번에는 16강 같은 것은 관심에 없었다. 독일이 잘해도 “잘한다!”하고 박수 쳐 줄 마음의 태세가 되어 있었다고나 할까. 정치가 초미 관심에서 물러가면서 축구도 죽고 사는 스포츠는 더 이상 아니게 된 것 같다.

이 평온함이 좋다. 원래 사람 사는 일에 죽고 사는 피비린내는 없어야 한다. 좋은 것을 함께 나누고 즐기는 것, 아쉬움을 함께 달래는 것, 그런 것이 좋다. /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