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재휘논설위원
▲ 안재휘논설위원

‘그때그때 달라요’라는 제목의 개그가 있었다. 2004년 10월부터 2005년 4월까지 SBS가 방영한 ‘웃음을 찾는 사람들(웃찾사)’의 한 코너였다. 영어강사 컨셉의 미친소가 영어문장을 엉터리로 해석하면서 온갖 견강부회(牽强附會)의 궤변을 들이대며 우기고 잡아뗀다. ‘그때그때 달라요’는 일관된 원칙 없이 상황과 입장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 말과 행동이 달라진다는 차원에서 ‘내로남불’과 일맥상통한다.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에 대한 정치적 논란 와중에 기막힌 일이 벌어졌다. 김 원장이 스스로 의혹에 대한 답변으로 내놓은 ‘관행’이라는 단어가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런데 그를 임명한 청와대에서도 똑같은 단어가 나왔다. 문 대통령은 관련 서면 메시지를 통해 “피감기관 지원 해외출장이 당시 국회의원들의 관행에 비춰 도덕성에서 평균 이하라고 판단되면 위법이 아니더라도 사임토록 하겠다”고 말했다.

적어도 새로운 도덕성을 잣대로 온 나라를 들쑤시며 ’적폐청산’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정부여당 쪽에서 낙마 위기에 처한 자파 인재를 지키기 위해 ‘관행’이라는 용어를 들먹거리는 것은 정말 아니지 싶다. 온갖 기관단체에 위원회를 만들고 쓰레기통을 뒤집어엎어 부지기수의 사람들을 망신주고 있는 정권이 써도 되는 방패는 결코 아니라는 이야기다. 오늘날 적폐청산 대상이 된 다수의 목구멍에 걸려있는 항변 제목이 바로 ‘관행’인 까닭이다. 관행(慣行)의 사전적 의미는 ‘오래전부터 해 오는 대로 함, 또는 관례에 따라서 함’이라고 돼 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지금까지 국민들의 눈에 일부분 치졸한 ‘정치보복’으로 비치는 ‘적폐청산’ 드라이브는 대한민국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아프지만 필요한 수술일지 모른다는 용허의 공간을 얻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정권주체들이 자신들의 문제에 이르러서 ‘관행’을 방패막이로 쓰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정부여당의 ‘관행’ 운운을 일갈하고 나선 조배숙 민주평화당 대표의 비판이 눈길을 끈다. 그는 “김 원장의 외유가 관행이라면,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정원 특활비를 가져다 쓴 것도 관행이었다”고 일갈했다. ‘관행’이 적폐청산의 제척사유가 되면 오늘날 새로운 윤리기준과 법조항을 들이대며 발라낸 과거의 허물들 중 대다수가 억울한 게 된다. 죄형법정주의의 파생원칙 중 하나로 ‘형법불소급의 원칙’ 또는 ‘소급입법금지의 원칙’이라는 것이 있다. 모든 법률은 행위 시의 법률을 적용하고, 사후입법(事後立法)으로 소급해서 적용할 수 없다는 원칙이다. 도덕의 잣대까지 반드시 이와 같아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법정이나 정치에서는 범법이나 탈윤리의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이 원칙은 큰 영향력을 미친다. 김기식 원장 문제를 다루면서 정부여당이 ‘관행’을 고리로 물귀신작전을 펴는 것은 더 큰 문제다. 여야를 불문하고 국회의원들이 국감기관의 예산으로 해외출장을 다녀온 사실을 반론의 근거로 삼는 것은 본질을 유치하게 왜곡하는 수법일 따름, 궁여지책에도 못 미친다. 그렇게 해외출장을 다녀온 국회의원들 모두가 금융감독원장에 임명된 것은 아니지 않는가 이 말이다.

국민의 눈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문재인정부의 국정과제 1호가 국민들의 눈높이를 더 높였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패거리정치의 자가당착에 대해서 국민들이 드디어 눈을 조금씩 뜨고 있다. 맹목적 관습 속에 성역처럼 온존하던 부조리나, ‘내로남불’의 논리에 갇힌 ‘관행’을 용납하지 않는 시대가 왔다. 국민 눈높이는 정치세력에 대한 지지율에 반비례하지 않는다. 스스로 투철하지 못한 윤리의식으로 권력을 누리는 행위의 불합리를 더 이상 참아 넘길 민심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견강부회의 억지개그에는 웃지도 울지도 않는다. 이제 ‘그때그때 달라도 되는’기준을 용인하던 시절은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