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재휘 논설위원
▲ 안재휘 논설위원

김구(金九) 선생은 자서전 `백범일지`에서 “나의 정치 이념은 한 마디로 표시하면 자유”라면서 “우리가 세우는 나라는 자유의 나라라야 한다”고 못 박는다. 이어서 “자유 있는 나라의 법은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에서 오고, 자유 없는 나라의 법은 국민 중의 어떤 한 개인 또는 한 계급에서 온다”고 말했다.

그는 또 “나는 우리나라가 독재의 나라가 되기를 원치 아니한다”고 명시했다. 독재와 관련해서는 “독재의 나라에서는 정권에 참여하는 계급 하나를 제외하고는 다른 국민은 노예가 되고 마는 것”이라면서 “독재 중에서 가장 무서운 독재는 어떤 주의, 즉 철학을 기초로 하는 계급 독재”라고 규정했다. 오늘날 한반도의 정세를 돌아보면 선생의 예지는 빛나고, 우려가 북한 땅에서 현실이 된 상황이 한없이 슬프다.

`특사` 정치가 무르익고 있다. 북한의 무모한 핵미사일 개발이 불러온 일촉즉발의 전쟁위기 앞에서 남북이 일단 대화분위기 조성을 위해서 발 벗고 나선 일이 나쁠 이유는 없다. 다만 진정한 평화를 구축할 의지도 없으면서 단지 시간을 끌어볼 심산으로 북한이 대화공세를 펼치고 있으리라는 의혹이 사실로 귀결될 경우에 일어날 파국은 예측을 불허한다.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을 꾸리는 일로 시끌벅적했고, 올림픽 개막과 폐막식 참가를 핑계로 현송일, 김여정, 김영남, 김영철 등 북한의 요인(要人)들이 오가면서 어질더분한 논란이 일었다. 얽힌 실타래를 풀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손을 대야 한다. 가만히 둔다고 저절로 풀릴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잘못 건드려서 사달이 날까 걱정되는 측면은 있다.

올림픽 기간 중 이뤄진 북한의 방남에 대한 답방 형식으로 파견될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특사 윤곽이 나왔다. 서훈 국가정보원장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투톱 형식으로 방북할 예정이란다. 전례 없이 장관급 인사가 두 명씩이나 특사로 파견되는 것을 보면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어떻게든 한반도 평화의 매듭을 풀어보려는 문재인정부의 강한 의지가 읽힌다.

문 대통령이 서훈, 정의용 두 사람을 특사로 지명한 일을 놓고 다양한 해석이 뒤따른다. 서훈 원장은 경험이 풍부한 대북전략통이라는 점이 거론된다. 정의용 실장은 김정은 위원장의 의중을 정확히 파악하고 이를 백악관과 공유하는 핵심적 역할을 맡을 것이라는 예측이 따라붙었다. 남북 특사 파견은 때로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한 적도 있지만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2007년 10월 4일의 `제2차 남북정상회담` 등 굵직한 성과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안타까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껏 한반도에서 영구적인 평화의 틀이 마련되지는 못했다는 점이다.

위기국면이 더욱 첨예해진 상황에서 가장 효력을 담보할 수 있는 진전은 서울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는 것이다. 평양을 방문하는 특사들이 남북정상회담을 조율한다면 `김정은 방남`을 요청하는 것이 옳다. 이미 두 차례 대한민국의 대통령들이 평양에 갔으니 이번에는 김정은이 서울에 오는 것이 순리다. 지난 2000년 9월 대남특사로 서울에 온 김용순 당시 당 중앙위 비서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방문`을 합의한 바도 있으니 불가능할 것이라고 예단할 필요는 없다.

김정은의 서울 방문은 한반도 평화에 대한 진정성을 담보하는 최고 수준의 증명이다. 불순한 목적으로 지금 위장평화공세를 펴고 있는 것이 결코 아니라면 그런 용단으로 입증하는 것이 맞다. 1948년 4월 19일 “38선을 베고 죽을망정 가야 된다”는 낭만적인 메시지를 남기며 경교장 뒷담을 넘어 방북 길에 나선 백범 김구는 그러나 김일성에게 철저히 이용당하는 뼈아픈 실책을 남기고 말았다. 그 옛날 백범은 자서전을 쓰면서 `자유`가 사라진 오늘날 북한의 혹독한 `독재`를 예감했을까. 새삼 궁금해지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