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희정<br /><br />문화부장
▲ 윤희정 문화부장

우리도 선진국 한번 만들어 보자는 소리가 나온 지가 10년이 족히 지났을 것으로 생각된다. 2005년 새해 들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선진국 진입`을 새해 화두로 꺼내면서 `선진국에 맞는 의식과 문화, 시스템의 정비`를 강조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당시 노 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 한나라당이 선진화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꺼냈다. 제대로 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실현을 내건 뉴라이트(New Right·신우파) 운동의 시민사회단체들도 이에 가세했었다.

하지만 이들의 `선진한국` 외침은 많은 국민의 호응을 끌어내지 못했었다. 경제와 민생이 워낙 어려워 선진이란 말 자체가 먼 나라 얘기처럼 들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특히 정권 측이 2, 3년 안에 선진국을 이뤄낼 듯이 말은 크게 하면서도 손에 잡히는 설계를 보여 주지 못하니 국민의 감흥이 더욱 약했던 것이다.

요즈음 항간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친 대중적인 모습이 좋으니, 안 좋으니, 그런척하느니 해석이 구구하다. 그런 중에서도 문 대통령의 모습이 좋다고 믿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동안 나라가 너무 찢기고 살아가기가 너무 힘들어져 대통령의 변화에서 지푸라기 같은 희망이라도 잡고 싶기 때문일 게다.

하지만 선진국 진입이건, 경제 최우선이건, 분열 아닌 통합이건, 집권 측의 구체적 선택과 결행이 성패를 가를 것이다. 언행(言行)이 일치된 동반성장을 기대한다. 말뿐이라면 제19대 대통령 당선용이라고 단정할 수밖에 없다. 의지만 있다면 임기 내에 행동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것들이 적지 않다.

문 대통령은 취임 이후 파격 소통 협치 등의 여러 부문에서 국민에게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일자리 문제, 외교 안보 등의 문제가 복잡하고 풀어야 할 현안들이 많다. 사정이 이렇다 해도 선진화 합창의 마이크를 꺼서는 곤란하다. 경제와 민생 살리기가 급할수록 선진에 초점을 맞춰 해법을 찾는 게 실은 `질러가는 길`이 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선진국 진입은 과거를 파먹는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 미래를 만들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힘들다. 그렇다고 포기하거나, 과거사 논쟁이나 하며 지새운다면 나라의 현상유지는커녕 후진을 면할 수 없다.

우선 `선진한국`이라는 화두를 국민 속에 심화시키고 구체화하는 일이 중요하다. 누가 이런 역할을 할 것인가.

병을 고치려면 의사의 처방이 중요하다. 그러나 환자가 어떤 마음을 갖느냐가 더 중요하다. 따라서 우리가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선진화의 시기도 달라진다고 할 수 있겠다. 먼저 우리 눈을 안에서 밖으로 돌려야 한다. 비좁은 삼등칸 안에서 자리싸움 할 것이 아니라 일등석을 바라봐야 한다. 그러려면 성장과 분배의 논쟁을 끝내야 한다. 성장 없이는 선진국가가 될 수 없다.

경쟁을 피해서는 안 된다. 경쟁만이 창의력과 효율성을 높여 준다. 지금처럼 우리 사회가 경쟁을 회피하고 자기들만의 성을 쌓는다면 경제는 활력을 잃게 된다. 기업이 중심이 돼야 한다. 정부가 경제의 주체가 되는 선진 국가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기업가의 모험심과 창의력만이 부를 증대시켜 준다.

`전망은 틀리기 위해 한다`는 농담같은 말이 나오지 말아야 한다. 삶의 질을 따지기엔 생계의 한계에 내몰린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내일을 향한 기대를 버릴 수가 없다. 국민을 더 자유롭게 하고 더 신바람나게 하는 통치, 대한민국의 힘을 모아내는 리더십만 가능하다면 멀지 않아 민생도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

대기업 길들이기, 법인세 인상, 왜곡된 분배정의, 고용의 경직성, 귀족노조의 끝 없는 요구, 사회주의 경제학자들의 중용, 이런 정책들은 외자유치를 방해하고, 국내 기업을 외국으로 쫓아낸다. 그래서 일자리는 점점 줄어든다. 남미나 남유럽 여러 나라들이 왜 망했는지를 우리는 깊이 성찰해야 한다. 그런 열린 통치를 하는 정부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