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한동<br /><br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한국은 GDP면에서 세계 10위권에 진입해 있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의 당당한 회원국이다. 우리나라는 복지와 의료 혜택의 증대로 평균 수명도 늘어나고 기대 수명도 상당히 높은 편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자살률은 단연 세계 1위이다. 2014년 기준 OECD 국가 평균 자살률 12.1명(인구 10만명 당)의 2배가 훨씬 넘는 27.3명에 이른다. 우리나라는 한해 평균 1만4천여명이 자살하고 하루 평균 38명, 매 시간 당 1.58명이 자살하는 셈이다.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자살 공화국`이라는 불명예를 얻은 것은 이러한 통계가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의 자살은 계층과 연령, 지위에 관계없이 발생하고 있다. 몇 해 전 재벌 기업 정몽헌 회장과 전직 대통령의 자살, 지난해 기업인 성완종 사장의 자살, 최근 롯데 이 인원 부회장에 이은 야구 해설가 하일성씨의 자살도 우리 모두에게 충격을 주었다. 이들 모두 검찰의 조사 과정에서 발생한 자살이다. 검찰의 수사 결과가 자신의 체면손상이나 자책감으로 이어져 극단적인 자살을 선택한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언론에 보도되는 이런 유명인 외에도 입시와 취업 실패, 가정의 불화, 생활고, 왕따의 소외감 등 사회적응 실패가 자살 행렬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노인 자살률이 증가하고, 심지어 젊은 층의 자살사이트를 통한 집단 자살도 증가하고 있으니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살의 원인은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뒤르케임은 그의 `자살학`이라는 저서에서 사회적 연대관계나 결속력 정도를 자살요인으로 삼았다. 그는 자살의 유형을 이기적 자살, 이타적 자살, 아노미적 자살이라는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었다. 이기적 자살은 가정파괴나 빈곤 등 공동체의 유대의식의 약화에 따른 자포자기적 자살이며, 이타적 자살은 그가 속한 집단이나 공동체에 대한 지나친 결속력에 따른 타자 지향적 자살이다. 오늘날 가장 많은 아노미적 자살은 자살자가 당면한 어려운 현실 앞에서 자기 혼돈(anomie)이나 착각에 의한 자살 유형이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드는 자살의 원인을 죽음의 본능에서 찾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삶의 에로스적 본능과 함께 타나토스(thanatos)라는 죽음의 본능을 가진다고 보았다. 인간은 적대적인 관계에서 자기 방어기제가 붕괴될 때 자기를 부정하고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상대에 대한 적개심이 그를 공격하거나 죽이지 못하고 자기애(自己愛)적 손상인 자살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정신의학자 링겔도 인간의 무능체험은 `자기 협소화`의 과정을 거쳐 자기에 대한 공격인 자살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신의학계에서는 이런 자살 증후군을 가진 사람은 반드시 병원을 찾아 치료하면 고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렇게 볼 때 한국인들의 자살은 대부분 아노미적 자살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 사회는 악의적 경쟁 구조와 한국인 특유의 `조급증`이 자살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인들의 조급증은 왕성한 성취동기와 근면성으로 이어져 한국적인`압축 성장`의 신화를 초래한 것은 사실이다. 그리하여 우리 주변에는 이러한 조급증이 벼락출세로 이어진 경우도 더러 있지만 실패로 인해 패가망신한 경우도 허다하다. 비정한 우리 사회는 이러한 낙오자를 실패자로 낙인을 찍고 만다. 한국적인 형식주의적 체면과 명분은 자살을 더욱 부추기는 계기가 된 것이다.

9월 10일은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이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자살 재시도자가 4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우리 사회의 자살문제는 이제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해서는 안 된다. 여기에는 자살방지를 위한 정부의 정책적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한국 사회를 원천적으로 건강하게 만드는 장기적인 대책도 필요하지만 정부 특단의 긴급 방지 대책부터 수립해야 한다. 정부는 자살예방 전문인력부터 확충하고, 시민 단체나 자살 예방센터에 대한 지원도 더욱 강화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