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주위덕대 교수·간호학과
살갗을 스치는 바람이 시원하다. 유례없이 더웠던 지난 8월의 폭염이 대자연의 그늘 속으로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고 있다. 이제 서서히 `살아간다는 것`의 적응이 이루어지고 있는 걸까?

모든 것들이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 개성 없이 흘러가는 즈음에 매서운 계절의 본 모습이 내 마음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최근에 알게 된 매미의 울음과 일생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매미는 여름 한 달을 살기 위하여 땅속에서 굼벵이로 짧게는 3년, 길게는 17년을 산다고 한다. 매미가 하루 종일 울어대는 이유는 죽기 전에 짝을 지어 종족을 퍼뜨리기 위해서다. 마침내 짝을 찾은 수컷 매미는 암컷과 짝짓기를 한 뒤 죽는다. 암컷 매미는 나뭇가지에 작은 구멍을 만들어 그 속에 알을 낳고 일생을 마친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난 이후로 이전까지 소음으로만 들리던 매미의 울음소리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중국 진나라의 육운(陸雲)이라는 시인은 매미의 다섯 가지 덕에 대해서 말했다.

첫째는 문(文)으로 머리에 관대가 있으니 문인의 기상을 갖추었다고 했고, 둘째는 청(淸)으로 식물이 내어주는 수액과 이슬을 마시고 살아 청정함을 갖추었다고 했다.

셋째는 염(廉)으로 다른 생명들에게 전혀 해를 입히지 않고 살아가니 청렴함을 갖추었다고 했고, 넷째는 검(儉)으로 일정한 거처가 없이 흙과 하늘, 나무줄기를 집으로 여기며 살아가니 검소함을 갖추었다고 했다. 다섯째는 신(信)으로 자신의 할 도리를 지켜 울어대니 신용을 갖추었다고 했다.

매미의 소리가 한갓 벌레의 잡음이 아니라 한 존재의 일생을 마감하는 처절한 절규였음을 인식한 후로는 현상을 바라보는 내 마음의 폭이 깊어진 것 같았다.

나는 이러한 현상들을 통해 무엇을 깨달은 것일까?

매일의 일상이 아픈 사람들과의 만남이었던 30대, 간호사 중년병 시절에 나는 문득 아름다움에 대하여 생각하곤 했다. 그때 나는 “아름다움은 눈에 있는 것 같다”고 말하였다.

매일 환자들을 간호하고 그들의 쾌유를 기도하였지만 그 속에서 아름다움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살았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고치를 뚫고 처음 세상으로 나온 나비의 어설픈 비상 마냥 위태롭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름다움을 찾는 나비의 서툰 비행이 있었기 때문에 인연처럼 그 아름다움의 의미가 내 마음에도 내려앉게 되었다.

어느날 내가 환자가 되어 수술대 위에서 느꼈던 의사의 정교하고 섬세한 손놀림, 부드러운 감촉으로 내 몸을 감싸주던 간호사의 따뜻한 손은 의료현장에서 나의 직업에 대한 의미를 일깨워준 강렬한 울림이었다. 누군가의 삶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행복을 지켜주려는 열정적인 움직임! 이게 간호사로서 내 본연의 모습이 아닐까. 이 아름다운 충격 이후 나는 그동안 사소하게 생각했었던 간호 행위들에 대해 신념과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게 되었다.

간호현장을 떠난 지 어언 8년, 학생들은 현장실습에서 느낀 점들에 대해 나에게 묻곤 한다. “환자의 더러워진 시트를 갈아주고 배설물을 치우는 것이 과연 전문간호사의 모습인가?”라고. 그러면 나는 어떤 행위가 전문적인가 비전문적인가에 대한 판단을 하기에 앞서 환자를 도와주면서 가장 보람 있었던 때를 생각해보라고 한다. 학생들은 “나의 밝은 미소에 환자가 같이 웃을 때, 어떤 일이라도 나의 도움으로 환자가 좋아지고 고마워할 때”라고 대답한다.

그것이면 족하다. 누군가를 도와줌에 있어 내 행위의 귀천을 먼저 따진다면 그건 진정한 도움이 되기에는 부족하다. 전문성에 대한 다양한 정의들이 존재하지만 전문성을 빛나게 만드는 것은 진정한 철학과 신념을 가지고 임하는 것이다.

나는 나이팅게일의 후예들에게 환자의 소변, 대변, 땀, 피, 고름, 가래와 친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눈에 보이는 현상 이면의 모습을 바로 볼 수 있어야 인간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지 않겠는가. 다음에는 자신의 행위에 철학을 가지고 임하라고 한다. 철학을 가지고 하는 행위는 진정한 아름다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