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영재<br /><br />포항예총회장
▲ 류영재 포항예총회장

`형산강 중금속 오염`이란 소식이 새삼스럽지는 않다. 강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형산강의 오염은 늘 염려되던 일이었다. 그러나 최근의 상황은 매우 심각해 보인다. 국립수산과학원 검사 결과 형산강 하류의 섬안큰다리 부근 4개 지점의 퇴적물에서 기준치보다 수십 배에서 수백 배를 초과한 수은이 검출되어 수질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는 기사를 접하고는 염려의 정도를 지나 일종의 위기감을 느끼게 됐다. 강에 대한 추억과 식수원 오염이라는 생존에 대한 현실적인 위기감으로 마음이 몹시 착잡하다.

형산강변의 연일읍 중명리가 내 고향 마을이다. 어린 시절의 형산강은 파란 꿈을 키우며 뛰놀던 놀이터였고, 고향을 떠나 공부하던 시절 여름방학이면 어김없이 강변 백사장에 천막을 치고 `리버사이드호텔`이라 부르며 지역의 미술학도들과 함께 예술가의 꿈을 키우며 별이 바람에 스치우는 밤하늘을 바라보던 곳이었다. 강은 평화였고 마을의 풍요를 제공하는 젖줄이었다.

포항은 지리적으로는 한반도의 변방이지만 바다와 산과 강, 숲의 풍요로움이 넘치는 천혜의 자연 환경을 가지고 있는 환동해의 관문이며 글로벌시대의 교두보이다. 형산강은 포항문명의 시원이며 조국 근대화의 기수인 포스코 입지의 근간이다. 그곳이 풍요의 젖줄이기는커녕 재앙 덩어리가 되어 버렸다니 참으로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몇 해 전 우연한 여행길에 이제 막 도시 건설을 시작하는 세종시를 지난 적이 있었는데 그 때도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함부로 잘라버린 산과 들이 만신창이가 되어 흉물스런 모습을 드러냄에 내 팔과 다리가 잘려 나간 것 같은 참담함을 느꼈다. 도대체 누가 그런 허가를 낸 것일까? 국가가, 정부가 무슨 권리로 조상들이 연면히 지켜온 유구한 역사의 땅을 저토록 무자비하게 난도질 할 수 있는가? 그것이 아무리 합법적인 행위라 하더라도 생태계를 저토록 함부로 하는 죄를 어찌하나? 생명에 대한 죄책감과 제도권의 이기심에 가슴이 미어지고 분노가 일었다. 현재의 세종시는 십여 년 전 과학상상그리기 대회에서 학생들이 미래의 도시로 그리던 상상화 속에 나오는 도시의 모습이 되었다.

물질문명의 한계는 속도와 비례하는 데미지를 안고 있는 것이 자명한 이치임에도`더 많이, 더 빨리`를 외치며 욕심을 부렸고, 그 결과 환경에 대한 우려와 같은 오지 않을 것 같던 미래의 재앙이 현실로 나타나는 것은 아닐까?

인간의 행복추구라는 명분 아래 쉴 새 없이 자행된 무분별한 건설, 수많은 건축들은 진정 누구를 위한 일이었을까? 이제는 그 해답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으며, 누린 행복보다 더 큰 불행의 부메랑이 우리에게 되돌아오고 있다. 참 무서운 일이다. 단지 환경 문제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삶이 두려운 것이다. 국가의 정책이 두렵고 내가 평생을 몸담아 온 교직에서 행한 교육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인지가 두렵다.

세월 탓이기도 하지만 급작스런 기후 변화(이 또한 대책도 없는 자연 훼손의 영향이다)에 올여름 더위를 견디기가 몹시 어려웠고, 쉴 새 없이 앞만 보고 달려온 세월에 가속도가 붙어 이제는 멈춰지지도 않는 삶이 고단하고 염려스럽다. 이 세상은 과연 최선을 다해 살아온 수고한 이들에게 진정 자신의 삶에 대한 성취감과 행복감을 느끼게 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런 것들에 대해 성찰하고 바로 잡을 새도 없이 또 다른 일들이 밀려오고 있으니 뒤도 돌아보지 못한 채 앞만 보고 내달리기만 하는 이 세상을 어찌하면 좋을꼬….

바닥은 혼탁하다하나 어느 때보다 태평하게 흐르는 형산강을 바라보며 강물처럼 순리대로 느릿느릿 갈 수는 없을까 하는 상념들이 교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