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곤<br /><br />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
▲ 김태곤 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

말복을 며칠 앞둔 지난 14일 오후 폭염으로 지친 몸과 마음을 더욱 힘들게 하는 한통의 한 비보가 전해졌다.

지병으로 요양 중이시던 박남희 경북대 교수가 끝내 병고를 이겨내지 못하고 운명을 달리하셨다는 내용이었다. 지난해 정년퇴임 기념전과 대구경북미술연구원 개원 세미나, 그리고 올해 수성아트피아 초대전 등 왕성한 활동을 이어 가시던 중 생겨난 일이라 그녀와의 이별이 주는 안타까움은 더욱 크게 느껴진다. 늘 부지런하고 누구보다 바쁜 삶을 살아가셨던 교수님의 생전 모습이 아직 눈에 선하다. 교육자이며 화가로서의 진정한 우먼파워가 무엇인가를 몸소 보여주셨기에 지역 미술인들은 그녀를 늘 존경하며 따랐다.

정년퇴임 기념전을 준비하며 한 언론사와 나누었던 인터뷰에서 그녀는 “학문과 예술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고 지금까지 정말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돈과 권력보다는 내가 생각하는 예술 세계, 바로 휴머니즘을 위해서였던 것 같습니다. 양심에 어긋남 없이 살아왔고 돈과 타협하지 않고 물질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대구 미술사에 대한 책도 하나 못 쓴 것 같아 후회스럽지만, 퇴임 이후 더 많은 저서를 남긴 선학들의 사례를 본받아 이제 제2의 인생을 설계해보려 합니다”라는 삶의 철학과 향후 계획을 말씀하셨지만 결국 그 약속은 공허한 다짐이 되고 말았다.

필자가 미술이론가로 활동을 시작하며 그녀와 함께 했던 다양한 행사에서 느꼈던 인상은 일에 대한 열정과 지나칠 정도의 집착이 주는 완벽함이었다. 그리고 누구보다 지역 미술계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깊었으며, 여성운동에도 적극적인 활동을 이어 왔었다.

“내 마지막 설 자리는 학교와 화단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바쁜 삶 가운데도 내가 내 자신에 대해 포기할 수 없던 부분이 바로 작품이었기 때문입니다. 작품이 가장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고요”라는 그녀의 말처럼 교육자와 화가라는 직업을 천직으로 여기고 살아 오셨으며, 결국 예술가로 삶을 마감하셨다. 바쁜 삶속에서 그녀를 지탱해 주었던 것은 다름 아닌 예술이었으며, 화가로서의 시대적 사명과 교육자로서의 사회적 역할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기에 성실히 실천으로 옮기셨다. 결코 본인의 직무를 회피하거나 힘들어 하기보다는 긍정적이고 도전적인 청년정신을 보여주셨다.

어린 시절 그림그리기를 좋아했던 꿈 많았던 소녀는 회갑을 훌쩍 넘긴 나이에 마련한 회고전에서 고이 간직했던 스케치북을 들추며 과거를 회상했다. “그림을 그릴 수 있어 행복했고, 그림을 통해 내 인생의 아름다운 부분들을 채울 수 있어 만족합니다. 그리고 이 행복을 후배와 제자들과 함께 나누며 살고 싶습니다”라는 대목은 예술이 인간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주느냐를 여실히 보여 주는 내용이다. 누구보다 미술을 사랑했던 그녀의 삶이었기에 그녀의 빈자리가 마냥 크게만 느껴진다.

대구미술의 산증인이며 살아있는 박물관 역할을 해주셔야 하는 장본인이신데 정작 대구현대미술사의 정리나 집필은 뒤로 미룬 채 역사 속으로 쓸쓸히 사라졌다. 대구 근·현대 미술사를 정리하기 위한 집필활동과 아카이브 구축을 시작하며 맞게 된 그녀의 죽음은 슬픔과 함께 주체할 수 없는 아쉬움만 남긴다. “박남희 교수님 당신께서 완성하지 못한 연구는 저희들이 계속해 이어나가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