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한 신부·감삼본당 주임

사람은 의지(depending)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 태어나면서부터 죽는 그 순간까지 `의지함`의 연속이다. 그래서 의지할 곳 있고, 그 의지할 곳이 든든하면 든든할수록 그 사람은 살아가는데 참 행복한 사람이다. 반대로 의지할 곳 없는 사람이 될 때, 그 때는 정말 사는 일이 막막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든든하게 의지할 곳이나 의지할 것을 찾는다.

그런데 `의지할 곳`이란 것이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중요하다. 세상이 가장 흔히 선택하고 또 권하는 바는, 사람에게 의지하거나 그것도 못미더우면 자신의 능력에만 기대어 살거나, 이도 저도 다 못 미더우면 재물이나 권력 등에 의지하며 사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의지함`이 중요하다고 하는 이유는, 대부분 세상이 얘기하는 `의지할 곳들`에 우리가 의지하고 살다 보면 결국 번뇌와 고난, 절망, 영적 메마름, 슬픔 등의 고통에 빠져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살아가면서 세상이 의지하는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고 또 그것을 믿고 살다가 스스로 힘들어 해 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면서도 그것을 쉽게 놓고 살지 못한다. 신앙을 하는 우리 자신 또한 세상에 의지하는 마음을 버리고 온전히 하느님의 능력과 그분의 사랑에 의지하며 산다고 자부할 만한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오늘 제자들에게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명령하시고, 신발은 신되 옷도 두 벌은 껴입지 말라고 이르셨다.” “길을 떠날 때에”, 다시 말해 인생을 살아가면서 세상이 흔히 의지하고 있는 헛된 것들에 의지하지 말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권유가 아니라 `명령`이다. 권유가 아닌 `명령`을 하신 주님의 속내를 헤아려보면 제자들에 대한 큰 사랑이 느껴진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이러한 세속적인 것들에 의지하는 것이 익숙해지면, 그 다음부터는 하느님의 사랑에 의지하는 것이 불편해지고 어려워지는 것이다. 신앙 또한 `의지하는 것`이다. 오늘 이 명령은 아무 것에도 의지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니라, 오로지 하느님에게 의지하라는 것이다. 더나아가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진리를 받아들이는 곳(집)에 “머물라”고 명하셨다. 그분의 진리와 사랑의 친교가 있는 곳에 머물라는 말씀이다. 어떤 특정 장소를 얘기하신 것이 아니라, 사랑과 진리를 실천하는 삶을 살라는 말씀이고 그것이 또한 하느님과 하느님의 백성이 머물러야 할 `집`(공동체, 교회)이 되는 것이다. 오늘 나는 무엇에 의지하고 살아가고 있는가? 나는 또 무엇에 의지하기를 바라고 있는가? 오늘 우리에게 명령하신 바대로, 우리를파멸로 이끄는 허망한 세상의 것들로부터 마음을 거두고 주님께 온전히 의탁하고 살아가는 삶을 다시 시작하자. 그래야 우리가 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