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현 정

눈 펄펄 날리는 오늘은 내 나귀를 구해

그걸 타고 그 집에 들르리라

그 집 가게 되면

일필휘지(一筆揮之), 뻗치고 휘어지고 창창히 뻗은 소나무 아래

지붕 낮게 해서 엎드린 그 집 주위를

한 열 번은 더 돌게 되리라

우선 당호에 들기 전 헛기침을 해보고

그리고는 내 타고 간 나귀를 살그머니 소나무 기둥에

비끌어 매놓고는

그리고는 냅다 눈발 속으로 줄행랑을 치리라 하는 것이다

완당이 그린 세한도는 극도의 절제미가 돋보이는 그림이다. 눈 속의 송백과 그 아래 집 한 채는 단순한 한 그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 단순한 그림이 거느리는 또 다른 것들이 있기에 우리는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송백의 지조와 그 집에 기거하는 청빈한 선비를 떠올리며 시인은 짖궂은 장난끼를 발동해보고 있다. 나귀를 타고 그 집을 열 번 정도 돌고는 나귀를 매놓고 줄행랑을 친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집의 선비는 나귀의 주인을 찾아 집 주위를 둘러볼 것이고 언젠가는 나귀를 찾으러 주인이 올 것이고 하는…. 이러한 유쾌한 상상을 하면서 시인은 세한도를 들여다 보고 있는 것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