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은 자신의 귓병을 끝까지 숨겼다. 유난히 자존심이 강했던 그는 차마 “내 귀가 점점 멀어져간다”는 고백을 하지 못했다. 음악가로서 청력이 망가지다니! 끝난 인생 아닌가? 그런 소리를 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점점 괴팍한 성격이 돼갔다. 남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하니 신경질을 잘 냈고, 인간관계가 원만치 못하니 따돌림을 당했다. 심지어 형제들에게도 오해를 샀다. 동생은 “인격적으로 파탄난 형과 같이 살 수 없다”며 결별할 정도였다.

베토벤은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지 않았다. “요양하라”는 내과의사의 처방에 따라 시골로 갔고, `전원교향곡`을 남기기는 했지만 귀는 점점 더 나빠져갔다.`합창`을 쓸때는 완전히 귀가 멀었다. 그는 유언이 된 편지 한통을 동생에게 보내 비로소 `청력상실`을 고백하면서 오해를 풀어준다. 그는 `낭만주의 고전음악의 마침표`를 찍은 악성(樂聖)이지만 자신의 일생은 불행으로 채워졌다. 정신과 상담으로 문제를 풀었다면 달라질 수 있는 일생이었다.

빈센트 반 고흐는 평생 정신질환을 달고 살았다. 미친듯이 작업을 하다가 지치면 발작증세가 나타났고, 그때 마다 가세박사를 찾아갔다. 동생 테오가 생활비와 그림도구를 지원해주고 정신과 의사와의 상담을 주선했다. `작품활동과 정신과 진료`의 동행은 고흐의 숙명이었다. 고갱과의 갈등으로 자신의 한쪽 귀를 자르고, 권총으로 자기 가슴을 쏘아 일생을 마쳤지만, 훗날 그에게는 `천재화가`라는 찬사가 붙었다. 평생 안 팔리는 그림만 그렸지만, 그렇게 많은 작품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정신과 진료 덕분이었다.

세상이 점점 비인간화 돼가면서 정신심리질환자가 늘어난다. 특히 한국인에게는 화병이라는 질환 하나가 덧붙는다. 그런데도 정신과를 찾기 싫어한다.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란 꼬리표가 싫은 것이다. 정신질환을 방치하니 `제 자식을 때려죽인 자`들이 자꾸 생긴다.

정부가 이제 동네 의원에도 정신과 진료를 시행하게 한다. 늦었지만 잘 한 조치다. 신체 질병보다 정신 질환이 훨씬 더 위험하다.

/서동훈(칼럼니스트)

    서동훈(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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