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희 림

사후에도

그 존재가 확실한 용도의

돼지나 소 막창 같은, 저 붉은

붉은 신호등 앞에서

멈추고 멈추어 온 나는 지금도 멈춘다

저 붉은 신호등의 붉은 색은 다만

나를 잠깐 멈추게 하는 가식인가

내가 진짜 멈추는 이유는

신호등의 저 붉은 색이

질서를 아름답게 만든다는 환상 때문인가

현대사회가 우리에게 획일화된 제도와 규율을 강요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시인은 붉은 신호등 앞에서 멈춰 서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있다. 붉은 신호등이 켜지면 멈춰서는 것이 관습에 길들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판단하고 이런 현상을 복잡한 세상사에 대입시키고 있다. 아무런 생각없이 따라하고 순응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에 대한 깊은 성찰에 이르게 하는 작품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