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강 산

태풍의 변두리에서 무릎까지 젖는 날이었습니다 마음의 옹이 하나 빼내어 보리라 작정하고 길따라 굽혔다 펴지는 사이 그만 안심사였습니다

적멸보궁 추녀 아래 비를 피하면 숲으로 젖고 숲을 비끼면 낙숫물에 파묻히다가 어둑어둑 찾아가는 해우소

접시에 결가부좌를 한 촛불 두 개, 면벽이었습니다 저 둘이 눈 감고 풀어내는 게 불빛인지 어둠인지 우두망찰하는 그 새 촛불 저편 쪽문으로 스르르 여승이 흘러갔습니다 어둠 한 자락이 해우한 듯, 펄럭, 따라 갔습니다 나는 뒤꿈치로 온몸 받쳐 들고 쪽문 밖으로 나섰습니다

문 밖엔 젖은 숲, 어둠이 또렷해지고 있었습니다

세상사의 번잡함을 피하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자 시인은 절집을 찾았다. 비우고 또 비우는 법을 터득하는 곳이 절집일텐데, 거기서도 해우소는 그야말로 근심을 해결하는 곳이다. 시인은 살면서 받은 가슴 속 상처를 치유하고 끝없이 비우고 살아가겠다는 다짐을 하고 또 하며 바깥 세상의 어둡고 젖은 숲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