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진 은

감자를 캐는 밭

벼논을 향해 집개가 짖는다

팔월 벼 자라는 소리에

개가 아는 체한다는 곁의 어머니 말씀

그 고요와 사랑이 만들어내는

소란의 맨얼굴을

나보담도, 줄기를 끌어당길 때마다

숨겨진 얼굴들 속속 딸려 나오는 걸 솔깃해 하는 나보담도

멍청하게 먼 곳만 쳐다보는 듯한 네가 더 잘 알고 있다니

늙은 개가 짖어댄다

고요와 사랑이 소복하게 담겨있는 동화 같이 재밌는 시다. 개짖는 소리가 요란한데 어찌 시제목을 고요 이야기라고 했을까. 씨 뿌린 논밭에 비 내리고 햇빛을 받아 식물들이 쑥쑥 자라 소담스런 결실에 이르는 시간은 요란하지 않다는데 착상한 시인은 식물 이야기를 하면서 요란하게 성장하고 요란하게 살다가 요란하게 죽는 인간의 한 생에 대한 것을 빗대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