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대환 작가·박태준미래전략연구소 연구위원
▲ 이대환 작가·박태준미래전략연구소 연구위원

나는 `정문술`이라는 한국인을 모른다. 스마트폰 따위에 의존하지 않고도 아는 정보래야 기껏 세 가지였다.

첫째, 정문술은 “부의 대물림을 하지 않겠다”는 신념을 실천하기 위해 잘나가던 `미래산업`의 사장 직위를 자식에게 양도하지 않고 조건 없이 전문경영인에게 물려준 인물이라는 것. 둘째, 내가 `박태준 평전`에 매달려 밤낮 분주하게 머리와 손을 부려대고 있던 2001년 어느 날에 “미래 먹거리 융합연구를 해달라”는 조건만 달아서 300억원을 카이스트(KAIST)에 기부한 인물이라는 것. 셋째, 포스텍 이사회가 포스텍에 `박태준미래전략연구소`를 설립하기로 해서 개소식을 개최한 날(2013년 2월 15일)로부터 일 년쯤 지난 어느 날에 “미래전략을 연구해야 한다”는 조건만 달아서 다시 215억원을 카이스트에 기부한 인물이라는 것. 정문술의 언행은 내 마음에 `존경스럽고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인상을 깊이 새겨줬다. 그의 두 번째 기부는 내 마음에 `부러워하게 만드는 사람이네`라는 한 문장도 머물게 했다. 이것은 `박태준 선생 외에도 민간연구소나 대학부설 연구소가 하는 미래전략연구의 중요성을 잘 이해하는 인물이 계셨고, 저 양반이 먼저 실천하셨네.`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박태준이 민간연구소로서 국가미래전략연구소 설립 의지를 처음 밝힌 때는 지금으로부터 33년 전인 1992년이었다. 그때는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였고 머잖아 김영삼 정부에서 정책기획수석을 지냈던 이각범은 이렇게 회고했다. “국가의 미래전략에 관심이 많았던 나에게 박태준 회장은 국가미래전략연구소를 설립해보라며 포항제철이 중심이 돼서 필요한 자금으로 40억원을 만들어주겠다고 했습니다. 당시 40억원은 지금의 물가에 비추어보면 아마 300억~400억원 규모가 될 겁니다.”

박태준의 고귀한 뜻은 무산되었다. 이듬해(1993년) 봄날, 바로 며칠 전 국립묘지에 안장된 김영삼 당시 대통령과 갈등 속에서 그가 포스코를 떠나야 했던 것이다. 그것이 30여년 만에 참으로 조촐하고 소박하게, 마치 하나의 새싹처럼, 한국사회에 조용히 고개를 내민 것이 포스텍 박태준미래전략연구소였다. 그러니 당신이 남겨놓은 소중한 유지(遺志) 하나를 헤아리는 나로서는 `정문술의 뜻`이 한참 부러울 수밖에 없기도 했다.

지난 주말에 나는 우연히 어느 책에서 정문술과 대화를 읽게 되었다. 그는 미래전략 연구를 위한 자신의 기부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의식을 드러냈다.

“정부도 국가 발전계획을 수립하고, 정부출연 연구소들도 비슷한 보고서를 냅니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면 목표와 방향이 하루 만에 달라집니다. 이런 일이 몇 십년째 반복되는 모습을 보면서,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우리나라에는 시류에 휘둘리지 않고 국민 편에 서는 든든한 싱크탱크가 안 보였어요.” 폭넓은 네트워킹을 추구하는 박태준미래전략연구소가 아직 정문술 같은 대담한 의인(義人)과는 인연을 못 맺었으나 찬찬히 성장하는 중이다. 지난 10월에 발간한 미래전략 에세이집 `10년 후 한국사회`가 해당 분야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 6월 베트남 하노이대학과 호치민대학에서 `포스코 성공과 박태준리더십의 개발도상국 적용방안`특별강연을 했다. 11월에는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린 유럽리더십경영학회(ECMLG)에 나가 `박태준리더십과 기업가정신`을 발표하고 저널 게재의 제안도 받았다. 오는 3일 연세대 상남경영원에서 대한민국 인사혁신처(처장 이근면)의 후원도 받으며 미래전략포럼 `바람직한 한국 행정관료 생성 메커니즘`을 주최해 기존 관료제에 대한 비판과 혁신안을 제시한다. 박태준미래전략연구소 기획·연구위원으로서 나는 그러한 일들이 새싹처럼 출범했던 연구소의 실제 성장 모습이라고 판단한다. 하긴 박태준정신의 요체가 무엇인가? 일류국가와 그 실현을 위한 무사(無私)의 선비정신과 불굴의 도전의지와 탁월한 미래전략 아닌가. 박태준, 이 인물을 나는 아주 잘 안다. 정문술, 이 인물과 나는 일면식도 없다. 다만, 공통점 하나가 분명히 보인다. 공공(국민과 국가)의 미래 희망과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의 가치`를 지상의 보배로운 자산으로 남겨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