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그대를 속이는 날에는

▲ 조낭희<br /><br />수필가
▲ 조낭희 수필가

녹음 짙은 가로수 터널을 달린다. 한때는 화사한 벚꽃잎이 구름처럼 피어오르다 분분히 떨어졌을 시린 날의 기억을 안고 길은 묵묵히 산을 향해 달린다. 이내 가파른 산길이 나타난다. 아름드리나무들이 가리고 있는 성성한 하늘빛, 천 년 고찰이 만든 숲 터널은 오르막에서도 지치지 않는다. 자동차로 굽이굽이 계곡이 없는 산길을 오른다.

도리사는 신라불교 초전법륜지로 잘 알려진 불교의 성지이다. 19대 눌지왕 때(417년) 고구려의 승려 묵호자로 알려진 아도화상이 포교를 위해 처음 세운 신라불교의 발상지이다. 아도화상이 수행처를 찾기 위해 다니던 중 한겨울 복숭아꽃과 오얏꽃이 활짝 핀 것을 보고 좋은 터임을 알고 모례장자의 시주로 절을 짓고 이름을 도리사로 지었다.

아도화상이 모셔온 세존 진신사리가 사리탑 보수 공사 중 국보 제208호인 금동육각사리함에 봉안되어 발견된 후 도리사는 더 유명해졌다. 하마(下馬) 대신 하차(下車)라는 표지석과 산사 음악회를 알리는 커다란 현수막 앞에서 대중과 호흡하려는 도리사의 발 빠른 변화를 읽는다. 높다란 계단 위에서 홀로 아래를 굽어보는 적멸보궁과 여름의 막바지를 장식하는 배롱나무꽃이 유난히 쓸쓸해 보인다.

호흡을 고르며 계단을 오를 때마다 배롱나무꽃의 슬픈 화사함이 가슴을 아리게 한다. 간결하고 단아한 적멸보궁 앞에 선다. 내 안의 잡다한 생각들이 사라지고 꽃이 열리듯 마음이 비워지기를 바란다. 선뜻 법당에 들어설 수가 없다. 겹겹이 가로막은 산들과 너른 들녘을 헤치며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 멀리 구미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우울한 마음을 서리서리 풀어낸다.

가끔은 소통이라는 그럴싸한 희망 앞에서 출구를 잃고 비틀거릴 때가 있다. 진심이 통하지 않는 삶 앞에서는 유난히 허기가 인다. 대화 속에서 상대의 진실성이 보이지 않으면 나는 입을 닫아버린다. 상대를 유연하게 다룰 수 있는 노련함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성격 탓이기도 하다. 어떠한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느냐에 따라 사람 사이의 궁합이 결정된다고 믿기에, 갈등의 실마리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순전히 스타일의 문제일 경우가 많다.

어쭙잖은 진실 하나만 걸치고 살아가는 나는 대수롭지 않은 일에도 곧잘 상처를 받는다. 사람들은 이것저것 손익을 계산하며 털어버릴지 모르지만, 그래도 나는 철이 덜 든 채로 늙어가고 싶다. 진신 사리가 모셔져 있는 사리탑을 향해 벽 전체가 유리문인 법당 안에서 기도를 한다. 유난히 더웠던 여름은 특별한 휴가 없이도 행복했다. 절을 찾아다니며 나와의 대화만으로도 일상은 눈물날 만큼 고마웠다.

무엇이든 순탄하면 재미가 없다. 아무리 나이가 먹어도 휘청거리면서 성장하는 법이다. 스스로를 격려하며 극락전으로 향한다. 과거 선방으로 쓰였다는 태조 선원과 오래된 단청 옷을 입은 정방형 다포 팔작지붕인 극락전, 그 앞을 지키는 보물 470호 석탑이 태곳적 은은함을 발하며 옹기종기 모여 있다. 고려 시대로 추정되는, 소박하고 안정감 있는 석탑에 끌려 탑돌이를 시작한다. 화려함이나 우아함을 거부하고 병풍처럼 둘러싸인 기단과 벽돌을 쌓은 듯한 탑신 부분의 안정감 있는 비율이 든든해 하염없이 탑을 돈다.

 

상념에 빠져 있다 퍼뜩 정신이 든다. 비탈진 솔숲 아래 돌계단 길을 홀로 걷고 있다. 집착과 갈등이 없는 곳을 향해 나아가는 피안의 길처럼 아늑하다. 무리 지어 하늘을 가린 노송들 사이로 수성한 기운이 자욱하다. 아도화상이 자신을 해치려는 자들을 피해 수행했다는 좌선대와 사적비가 침묵하며 서 있다. 얼굴빛이 검다는 묵호자가 상서로운 기운을 풍기며 좌선하는 듯한 환각에 사로잡히자, 아무도 몰래 높고 평평한 좌선대 위에 나도 맨발로 올라 정좌해 보고 싶은 충동이 인다.

허전한 마음을 달래며 나오는데 배불뚝이 중국 스님, 포대화상의 넉살 좋은 웃음이 눈에 거슬린다. 천 년 고찰 도리사에 안개처럼 스며드는 변화의 기운들이 안타깝지만, 시대의 흐름 앞에서 어쩔 수 없는 숙고의 선택이었으리. 주차장에서 반대편으로 이어진 나무데크길을 걸으며 삶은 선택의 연속임을 깨닫는다. 수려한 풍경을 발아래 드리운 전망대 위에 서서 몸과 마음이 구름처럼 가벼워지기를 기도한다.

뒤늦게 수십 개의 나무 좌선대를 발견한 것은 얼마나 운이 좋은가. 띄엄띄엄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이 생각에 잠기거나 대화를 나누며 여름의 하오를 즐긴다. 특별히 나를 위한 좌선의 공간임이 틀림없다. 자리를 잡고 앉자 솔바람이 숨결처럼 위무한다. 삶이 무엇인지 제대로 몰랐던 시절 읊어대던 푸쉬킨의 시구가 떠오른다. 나는 나를 위해 속삭이듯 읊어본다. 키 작은 가로등이 눈을 감고 경청해 주는 소나무 그늘에 앉아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 마음 아픈 날에는 가만히 누워 견디라/ 즐거운 날은 오고야 말리니/ 마음은 먼 미래에 살고/ 현재는 한없이 우울한 것/ 모든 것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지나가 버린 것은 그리움 되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