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소리 바람소리로 마음을 씻어내고

▲ 구례 화엄사
▲ 구례 화엄사

아침부터 폭염의 방해가 만만치 않다. 영호남의 분수령인 지리산, 그 영산의 기운 앞에서 무엇이 두려우랴. 오랜 벗이 있어 더욱 든든한 여행길이다. 짙은 녹음과 노고단에서 흘러내리는 계곡물 소리에 싸여 시원한 일주문이 우리를 반긴다. 의창군이 썼다는 `지리산 화엄사`라는 필체에서 천년 고찰의 웅혼함이 느껴진다.

화엄사는 544년(백제 성왕 22년)에 연기조사가 창건한 사찰로 절의 이름을 화엄경(華嚴經)에서 따서 화엄사라 하였다. 부처님의 세계이며 깨달음의 성지라는 뜻이다. 그 후 의상대사가 화엄종의 원찰로 삼아 머물고, 신라 경덕왕 때는 8가람, 81암자의 대사찰이 되어 남방 제일 화엄대종찰이란 명성을 얻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30년(선조 30년) 벽암선사가 복원시켰다.

짧은 시간에 화엄사의 모든 걸 알기에는 역부족이기에 낯선 곳이 주는 신선함과 감동을 섣불리 기대해서는 곤란하다. 나는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경내를 거닌다. 관광객의 분주한 방문 속에서도 화엄사는 흐트러짐 없는 기운으로 나를 긴장시킨다. 다행히 템플스테이를 담당하시는 유일한 홍일점 비구니, 동호 스님의 맑은 눈빛과 미소 속에서 여성적인 화엄사를 발견한다.

절제와 안온함을 갖춘 화엄사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간다. 나를 사랑하고 예뻐해야 우주만물 모두를 사랑할 수 있다는 단순한 화두를 잡고 보제루 마룻바닥에 정좌한다. 저녁 예불이 끝났지만 대웅전 염불소리는 그치지 않는다. 물소리 바람소리에 천천히 몸을 맡기자, 함께 온 친구의 존재감도, 처음 만난 인연들도 더욱 소중하게 다가온다.

내면을 고요하게 만들 때만큼 행복한 순간도 없다. 내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아는 것만으로도 안정감을 느낀다. 사찰에서 엄수해야 할 규율과 절제, 화엄사의 구석구석을 느끼고 싶어하는 나의 열정들, 그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걸 알아차린다. 나를 온전히 내려놓지 않으면 화엄사는 좀체 속살을 보여주지 않으리라. 긍정적인 생각들이 나를 좀 더 깊고 높은 곳으로 데려간다. 실타래처럼 뒤엉켜 있던 자잘한 감정들도 유순해진다.

저녁 예불의 감동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벌써 어둠이 내려앉는다. 나는 다시 한 번 국보 67호인 각황전이 보고 싶다. 우아하면서도 장중한 비례미로 나를 단번에 압도시켰던 국내 최대 규모의 목조건물이다. 거대한 통나무 기둥이 이음새 없이 5층 높이의 통층을 받치며 위엄을 풍기던 장엄함이 자꾸만 아른거린다.

홀로 어둠 속을 걷는다. 완만하거나 가파른 계단들과 석축을 경계로 전각들은 짜임새 있게 잘 구분되어 있다. 가로등 불빛만이 불 꺼진 전각들을 비추며 밤을 밝힌다. 밤바람이 시원하다. 전각들은 어둠 속으로 침몰하지 않고 은은하게 위용을 드러내며 침묵 중이다. 잘 생긴 삽살개 두 마리와 손전등을 들고 순찰을 도는 경비 아저씨를 통해 흐트러짐 없는 또 다른 화엄사를 만난다.

누하진입식이 아니라 최대한 키를 낮추고 넉넉한 품을 누구에게나 열어주는 보제루, 기둥은 자연그대로의 나뭇결이 살아 꿈틀대듯 아름답다. 우측으로 돌아서니 저녁 예불을 알리던 법고의식과 타종 소리가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두두둥 둥둥 절도 있는 리듬과 엄숙한 감동이 밀려들고 화엄사는 어둠 속에서 또 다시 생기를 발한다.

보제루 툇마루에 가만히 걸터앉는다. 정적만이 감도는 화엄사가 내게로 다가온다. 건물 전체가 국보인 각황전과 6.36m의 거대한 석등의 조화, 석가모니불이 아니라 비로자나불을 주존불로 봉안한 대웅전, 석축 아래에서 두 전각을 떠받들 듯 우아하고 겸손한 동·서 오층석탑까지 어느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다. 전각들의 적당한 공간배치와 섬세하면서도 화려한 석등과 탑들이 완벽한 하모니를 이룬다.

고즈넉한 밤 풍경에 취해 있다가, 각황전 석등 앞에서 기도하는 사람을 뒤늦게 발견했다.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이 돌부처처럼 오래도록 서서 기도를 한다. 끝날 줄 모르는 기도가 나와 화엄사를 긴장시킨다. 호기심은 어느 새 그를 위한 기도로 이어진다. 그는 각황전과 석등을 향해, 나는 일면식도 없는 그를 위해 기도한다.

 

▲ 조낭희 수필가
▲ 조낭희 수필가

모두가 잠든 밤, 무엇을 저토록 간절히 빌고 있을까? 병상에 누운 가족이나 쓰리고 혹독한 상실의 아픔, 상상력의 범주는 자꾸만 확대되어 간다. 막다른 길 앞에 서 그의 쳐진 어깨가 유난히 외로워 보인다. 절망이 존재하지 않으면 희망도 존재하지 않는다. 절절한 기도와 염원이 있어 화엄사의 밤은 더욱 평화롭고 안온한지 모른다.

새벽예불을 알리는 목탁소리에 명징해져 오는 기운들, 부처님의 발걸음처럼 낮고 은은하게 젖어들던 타종 소리, 서른 분이 넘는 스님들과 함께 보는 각황전의 새벽예불은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친구와 저만치 떨어져서 걷던 구층암 가는 대숲 길, 마음을 씻어내자 바람소리, 물소리가 온 몸에 스며든다. 무언가에 한눈을 파느라 잊고 살았던 고요의 세계, 어쩌면 나는 가장 소중한 것을 놓치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늘 숲에 들어가서야 숲의 느낌을 기억해 내고 그리워할 줄 아는, 나는 아둔한 한 그루의 나무인지 모른다.

    조낭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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