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 한 권을 읽는 만큼의 정성으로

아름드리 소나무 숲길을 기대했지만 인적 없는 주차장에는 오후의 땡볕만 이글거린다. 바람 한 점 없는 길에는 열기가 가득하지만 햇살과 신록, 맑은 하늘빛이 아름답다. 사천왕상이 모셔져 있는 회전문과 커다란 법고가 있는 해운루를 통과하면 고요한 적멸의 공간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첫인상이 유난히 정갈한 사찰이다.

용문사는 870년(신라 경문왕 10년) 두운 선사에 의해 창건된 천년고찰이다. 고려 태조 왕건이 신라를 정벌하러 내려가다 이 사찰을 찾았으나 운무가 자욱하여 지척을 분간치 못할 때, 청룡 두 마리가 나타나 길을 인도하여 용문사라 불렀다. 한 때 영남 제일강원으로 불릴 만큼 큰 사찰이었으나 화재로 인해 사세가 크게 줄었다고 한다.

해운루를 누하진입식으로 통과하면 높다란 계단 위에서 보광명전이 위엄있게 우리를 내려다본다. 험준한 소백산맥의 지형을 이용해 만든 사찰이다. 조용한 경내에는 햇살만 넘실거릴 뿐 아무도 없다. 넓은 마당을 두리번거리다 영남제일강원의 주련 앞에 섰다.

“漢武玉堂塵已沒 (한무옥당진이몰)/ 石崇金谷水空流 (석숭금곡수공류)/

光陰乍曉仍還夕 (광음사효잉환석)/ 草木在春卽到秋 (초목재춘즉도추)/

處世若無毫末善 (처세약무호말선)/ 死將何物答冥侯 (사장하물답명후)”

“한무제의 궁궐은 이미 티끌이 되었고/ 석숭의 별장에도 쓸쓸히 물만 흐르네/ 세월은 빨라 새벽이다 싶으면 이내 곧 저녁이 되고/ 초목은 겨우 봄인 듯하면 어느덧 가을이 되고/ 세상을 살면서 털끝만한 선행도 못하면/ 죽어서 염라대왕에게 무엇으로 대답하리.”

약간의 나른함이 밀려드는 오후의 시간, 번쩍 정신이 든다. 갱년기로 우울해 있던 나를 향한 죽비였다. 고개를 들 수가 없다. 선행은 말로, 혹은 마음속에서만 머물다 늘 엉뚱한 것에 밀려 잊혀지곤 했다. 쫓기듯 하루를 보내고 잠자리에 들 무렵이면 정체 모를 허기감이 몰려왔다. 그것은 삶에 대한 경고였다. 땡볕에 우두커니 서서 나를 돌아본다.

보광명전으로 향하는 계단 위에 넝쿨식물들이 가지를 뻗고 일렁인다. 하염없이 쏟아내는 햇살의 고운 마음들이 잎새 위에서 빛난다. 햇살과 바람은 결코 서두르거나 분주해 보이지 않는다. 다만 서로를 위해 존재할 뿐이다. 잎새들이 다칠까 조심조심 계단을 오른다.

화재로 소실되어 최근에 중수한 보광명전은 새 전각답게 깔끔하고 화려하다. 반들반들 윤이 나는 마룻바닥의 촉감이 채 가시기도 전에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에 매료되고 말았다. 흔들림 없이 빈 몸으로 불어오는 듯하지만 성성한 기운이 실려 있는 바람을 보광명전 기둥에 기대어 서서 온 몸으로 맞는다.

대장전은 고려 명종 3년(1173년)에 대장경의 일부를 보관하기 위해 지어 조선 현종 때 중수한 건물이다. 보물 684호인 우리나라 유일의 회전식 윤장대가 있는 곳이다. 큰 맞배지붕을 이고 서 있는 전각에는 국보급 보물로 가득하다. 전각 모서리에 새겨진 연꽃과 물고기, 도깨비를 닮은 귀면의 주술적 방어력 때문인지 유일하게 화재를 면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대견하고 신통할 뿐이다.

세월의 깊이를 품고 있는 법당에도 다양한 조각과 장식들로 화려하다. 삼존불 뒤에 금빛으로 도금을 한 아미타후불목각탱도 조선 숙종 10년에 제작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작품이다. 불교신자가 아닌 지인이 모자를 벗고 정성을 다해 절을 올린다. 주름이 지고 머리가 희끗한 노신사의 일배(一拜)는 거룩해 보이기까지 하다. 뜨뜻한 무언가가 전신에 퍼진다. 신앙의 차원을 넘어 우리의 혼과 문화에 대한 사랑과 정성, 그것은 숭고함이다.

질풍노도의 시간들을 견뎌온 대장전 건물과 작은 법당을 지키고 있는 보물들을 호젓하게 감상할 수 있는 기회도 쉽지 않은데, 오늘은 이래저래 운이 좋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제대로 보이는 것들이 있어 때때로 삶은 숙연하다. 엉뚱한 것에 한눈을 팔고 있던 나를 기다려준 세월과의 조우, 가슴이 뭉클하게 젖어 온다. 장구한 역사를 버텨온 우리 것에 대한 자랑스러움과 나의 무관심, 다양한 감정들이 교차된다.

윤장대를 돌리면 번뇌가 소멸되고 공덕이 쌓여 소원이 성취된다고 한다. 정성을 다해 한번 돌리면 한 권의 경전을 읽는 것과 같다는데 지금은 일 년에 단 두 번만 돌릴 수 있다. 손때가 묻어 노쇠한 흔적이 느껴지는 윤장대는 어떤 소리를 내며 돌아갈까? 나는 두 손을 모으고 탑돌이를 하듯 주위를 돈다. 삐거덕삐거덕 낡은 마룻바닥이 걸을 때마다 고통을 호소한다.

 

▲ 조낭희 수필가
▲ 조낭희 수필가

경전 한 권을 읽는 것과 같은 `정성`이란 얼마만큼을 말하는가? 돌고 돌아도 감이 오질 않는다. 습관처럼 흔하게 썼던 말이다. 정성이란 말로 몇 번이나 내 삶을 기만했던가? 그 말이 가지는 무한한 힘을 생각해 본다.

깊은 생각에 잠겨 응진전으로 향하는데 스님 서너 분이 뙤약볕에서 풀을 뽑고 계신다. 스님의 미소 뒤로 마중을 나오는 순백의 꽃물결들, 마가렛 무리가 꽃등이 되어 길을 밝힌다. 일하는 스님들과 하늘빛이 아름다운 용문사, 그곳에 가면`정성`을 눈으로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