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 자 미

베란다 난간

응달을 타고 오른 나팔꽃이

손가락 없는

덩굴손을 허공에 얹는다

높은 곳으로 외가닥 줄을 대는 중이다

V자 그리며 지상으로 왔으나

파리하게

입술이 타들어 오그라졌으므로

나도 그랬다

위급하니까

어쩔 수 없었다

베란다 난간 응달을 타고 오르는 나팔꽃 넝쿨에서 시인은 지난 시간 속에서의 한 순간을 생각하고 있다. 살아오면서 절박한 시간과 형편에 봉착됐을 때 느꼈을 것 같은 그 위급함을 나팔꽃 넝쿨손에서 보고 있다. 시인의 섬세한 시안이 포착해 낸 한 그림에서 아슬아슬하게 한 생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다시 본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