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재휘 서울본부장

파리 에펠탑은 1889년 3월 31일 프랑스 혁명 100주년 기념 제10회 만국박람회의 상징물로 준공됐다.

건축가 구스타프 에펠(Gustave Eiffel)에 의해 탑의 건축설계도가 처음 공개되었을 때 프랑스 국민들과 지식인 예술가들은 철골구조인 에펠탑을 `고철덩어리`·`쓸모없고 흉측한 검은색 굴뚝`·`파리예술의 모욕`이라며 거칠게 반대하고 나섰다.

그러나 건립 당시 모진 수난을 겪어야 했던 에펠탑은 120여년이 지난 지금 프랑스를 훌쩍 뛰어넘어 유럽의 랜드마크로 등극해 있다. 이 탑은 오늘날 하루 평균 1만 8천명, 1년에 700만 명이 찾는 관광명소가 돼있고, 올해 관광객 유치 1억 명이라는 야심찬 목표를 내세운 프랑스 관광산업의 중추다. 지난 2012년 한 조사에서 에펠탑의 경제적 가치는 무려 4천346억 유로(한화 약 600조원)로 평가됐다.

오늘날 정치권은 굵직한 정치적 판단을 내리기 위한 기법으로 일상적으로 여론조사를 사용한다. 지난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정몽준` 후보가 여론조사를 통해 단일화를 완성한 이래,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안철수` 단일화 과정에서도 여론조사를 추진한 바 있다. 당내 경선에서도 여론조사가 `전가의 보도`처럼 쓰이면서 100% 여론조사 후보결정도 항다반사다. 그야말로 여론조사 만능주의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론조사 정치`가 횡행하면서, 정당의 효용가치는 밑바닥으로 가라앉았다. 한국에서는 이제 더 이상 교과서적인 `대의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여론조사 결과에 편승한 포퓰리즘이 지배하는 천박한 정치풍토 속에서, 국민들을 선도하는 `미래지향적인 정책정당 건설`은 시대에 뒤떨어진 멍청한 헛소리 취급을 받는다. `여론조사 결과`라는 숫자놀음에 그 어떤 거시적인 정책의지도 생성되거나 배겨낼 재간이 없다.

“참고자료에 불과한 여론조사로 주요 의사결정을 대체하는 것은 문제”라는 전문가들의 끈질긴 지적에도 불구하고, 쏟아지는 여론조사의 수치변화에 청와대를 비롯한 여야 정당들이 종속되어가는 정치풍토는 비극이다. 지지도 변화에 일희일비하는 정치권의 과민반응은 다분히 희화적이다. 바람처럼 빠르게, 변화무쌍하게 출렁거리는 대중여론의 흐름에 이렇게 무력해서야 수십 년, 수백 년 뒤의 가치를 헤아려 민족의 역사를 바꿀 새로운 설계도를 어찌 그려내고 밀어붙일 수 있으랴.

여론정치는 모든 정치활동을 여론과 연결시켜 그 정당성을 인정받으려고 하는 일종의 편의주의적 정치행태다. 사회적으로 조직화된 `현재적(現在的) 여론`에 도취돼있는 대중의 정치의식에 끌려 다니는 것이 문제다. 사고나 관념으로서 사회 안에 산재해 있는 잠재적(潛在的) 여론을 현재적 여론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참다운 민주정치가 이루어지기 위해 정말 중요한 것은 이성의 힘으로 올바른 여론이 형성되도록 하는 일이다.

만약, 옛날에도 오늘날처럼 여론조사 정치가 횡행했다면 프랑스 에펠탑이나 한국의 경부고속도로는 결코 탄생되지 못했을 것이다. 에펠탑의 영광은 따따부따 떠들어대는 제법 안다는 지식인들의 비난에 프랑스 정부가 휩쓸리지 않음으로써 성취해낸 위대한 역사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기인하는 한국경제의 번영은 조변석개하는 정치권 논란과 여론의 위력에 박정희 대통령이 맥없이 휩쓸리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찬란한 기적이다.

여론조사는 기술적인 한계 때문에 결코 `객관적인 판관` 역할을 할 수가 없다. 이젠 제발 좀, 정치지도자들이 먼 미래를 내다보고 뚝심을 발휘했던 선인(先人)들의 역사에서 살아있는 교훈을 찾아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