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빛은 인격이다. 낯빛이 긍정적인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눈 마주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신호를 온 얼굴에 심는다. 바라만 봐도 닮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반면에 유난히 낯빛이 부정적인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상대와 눈을 잘 마주치지 않는다. 상대를 거부하겠다는 신호부터 온 얼굴 표정으로 보낸다. 우울한 낯빛에는 연민이라도 생기지만, 뭔가 불만 가득한 사람의 낯빛은 경계심만 불러일으킨다.

얼굴빛은 자기 긍정의 문제와도 관련이 있다. 인생 계발서를 무조건 신뢰하는 건 아니지만 그 책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누구보다 신뢰한다. 그들 메시지의 공통점은 `긍정하는 힘`이다. 물론 긍정하는 게 무조건 옳은 건 아니다. 자기 긍정만으로 감당할 수 없는 환경적, 물리적 제약이 분명히 현실 속에는 존재한다. 긍정하는 자세만을 주입하는 계발서들에 대해 희망 고문을 한다느니 무모한 낙관주의를 심어줬다느니 하면서 비판하는 입장도 이해가 된다. 예를 들면 기아에 시달리는 지구촌 사람이 아무리 긍정의 상상을 한다한들 배고픔이 해소되는 게 아니고, 북한 주민 누군가가 아무리 자유에 대한 갈망을 긍정한다 해도 그것이 쉽게 눈앞에 펼쳐질 수 있는 건 아니다. 개별자가 감당할 수 있는 긍정의 한계 안에서 긍정하되, 얼굴빛에 그것을 담는 연습을 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긍정의 자세와 자기 확신을 가지도 우리가 원하는 걸 모두 얻지는 못한다. 언제나 이룬 것보다 이뤄야 할 것들이 많은 게 우리 삶이다. 긍정하면서 좇아도 웃을 수 있을까 말까한데 굳이 부정하고 비관하는 얼굴빛을 연출할 필요가 없다. 모든 건 맘먹기에 달렸다. 물론 맘만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실행에 옮기는 게 더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적, 외적 에너지가 요구된다. 이때 필요한 것이 긍정의 힘이다. 가만 보면 `힘들어, 귀찮아, 될까` 이런 말을 자주 해왔다. 맘과 몸이 덜 따라와 줘도 낯빛부터 긍정하는 훈련을 해야겠다. 얼굴이 긍정적인 사람들은 안 될 일도 되게 하는 힘이 있다.

/김살로메(소설가)

    김살로메(소설가)

저작권자 © 경북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