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증 식

열무밭에 김을 매는데

꽃인 줄 알았나 보다

어깨 위에 문득 나비의 숨결

날개를 접고

가슴께를 더듬어보고

오래 내 눈을 들여다보기도 하더니

이제 그만 돌아서 간다

등 돌린 그녀의 날개가 젖어 있다

오래전에 날려 보낸

그때 그

흰나비 한 마리

모든 인연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다. 스치는 바람 한 점도 오랜 시간 준비된 필연이며 휘몰아치는 폭풍우도 억겁의 인연을 거쳐 여기에 온 것이다. 하물며 예쁜 날개를 가진 나비 한 마리도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며 그 설렘은 대단한 것이다. 그렇게 애절하게 왔다가 날아가 버린 그 때 그 흰나비 한 마리는 그가 보내버린 사랑이었다고 말하는 시인의 목소리가 아련한 그리움에 젖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