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재휘 서울본부장

`미니총선`이라는 이름으로 의미가 한껏 부풀려진 7.30재보선을 앞두고 각 당이 벌이고 있는 혼란한 공천양상은 정상적인 민주주의국가 개념의 멀쩡한 상식에 비쳐볼 때 실로 목불인견(目不忍見)이다. 굳이 정당을 따로 가릴 이유도 없이 히든카드, 마스터키, 아니면 만병통치약을 찾는다고 무한 난리 굿판을 벌이고 있다. 하긴, 선거철만 되면 영락없이 벌여온 야단법석이니 특별히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긴 하다.

전국 15개 지역에서 치러지기로 돼있는 대규모 재보선 판에, 여당의 국회 과반의석의 존속여부가 걸린 급박한 현실을 감안하면 일부러 그 중요성을 깎아 말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역대 재보선이 늘 그러했듯, 이번 선거 역시 지역대표를 뽑는 선거로서의 참다운 의미는 무릇 만신창이가 됐다. 이런 저런 사정으로 한 발짝 뒤로 밀려나 있던 거물 정객들에게 컴백기회를 제공하는 장마당이라는 특성까지 가미되면서, 선거는 이미 철저하게 `중앙당`그들만의 장기판으로 변하고 말았다.

대구·경북지역에서는 재보선 판이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이번 선거의 결과가 지역정치에 미칠 영향까지 아주 없어진 것은 아니다. 여야가 중앙당 여력까지 박박 긁어서 한바탕 대전(大戰)을 벼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무조건 이겨야 할 이유가 덕지덕지 달라붙으면서 과열을 추동하는 사유들이 즐비해졌다. 한참 엇나가고 있는 재보선 현상을 지켜보노라면, 정치판의 행태를 `정상(正常)`이라고 읽을 여지는 이제 남아있지 않아 보인다.

나오겠다는 사람 굳이 빼돌려 다른 곳에다 박는 일, 도전하겠다는 사람들이 수두룩한 곳에다가 제 사람 심기 파워게임을 벌여 이상한 `전략공천`을 감행하는 일, 사전에도 없는 십고초려(十顧草廬)라는 신조어까지 지어내며 싫다는 사람 부득부득 꼬드기는 일, 공천에 불만을 품고 당대표 사무실을 점거하여 며칠씩 뻗대는 일…….

아무리 좋게 보아도 이건 명명백백 후진정치의 참상에 다름 아니다. 결코 선진 민주주의국가에서 전개되는 올바른 정치라고 할 수 없다. 마스터키를 맹신하는 정치꾼들이 앞장서서 벌이는 돌려막기 공천이거나, 오직 흥행만을 위해 순리와 질서를 무너뜨리고 펼치는 무지막지한 캐스팅 전투로 읽어 마땅하다. 무엇보다도 참담한 것은, 여야 정당들이 벌이고 있는 공천과정에는 프로선수들의 계산만 난무하고 정작 주인인 유권자들의 자치정서는 철저하게 묵살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성의 눈으로 잠시 되물어보자. 이런 식으로 치러진 재보선으로 일궈낸 한국정치의 업적은 무엇인가. 그래서 한국정치가 얼마나 좋아졌는지도 함께 물어보고 싶다. 인지도가 높은 명망가를 골라 아무데나 갖다 꽂아 당선시키고, 그리하여 중앙당의 파워를 높인 일로 인해 상처투성이가 되어버린 유권자의 존재감은 정말 안중에도 없는가. 여전히 민심이 그렇게 움직이니 어쩔 수 없다는 변명을 내놓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그 말이 참이 되려면 국민들에 대한 정치지도자들의 선도(先導)기능 말살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

옛적 장날에 맞춰 어쩌다가 `떠돌이약장수`라도 한 번 오는 날이면, 시골동네는 한바탕 소동이 일곤 했다. 거의 모든 주민들이 몰려나와 약장수의 현란한 혀놀림에 흥분하고, 악사들의 연주나 재인들의 재주넘기에 취해 삶의 시름을 잠시 잊기도 했다.

그러나 어리보기들이 모여 사는 곳을 노려서 찾아다니는 뜨내기장사꾼들의 분탕질에 뒤늦게 가슴을 치고 땅을 치는 쪽은 늘 시골동네 주민들 쪽이었다. 따지고 보면 이익을 얻는 편은 늘 약장수 쪽이었고, 많은 동네사람들은 약장수 패들의 감언이설에 넘어가 어쩌다 잘못 사먹은 엉터리 `만병통치약`으로 인해 설사복통과 함께 가슴앓이를 겪어야 했다. 바야흐로, 대한민국 정치판은 지금 떠돌이약장수 천국이다. 아니, 치졸한 낙하산 전쟁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