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하` 윤고은 지음 창비 펴냄, 309쪽

대산대학문학상,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며 차세대 주목받는 젊은 작가로 떠오른 윤고은의 두번째 소설집 `알로하`(창비)가 출간됐다.

제12회 이효석문학상 수상작인 `해마, 날다`를 비롯, 윤고은의 재기발랄한 상상력과 절박한 세계인식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아홉편의 작품을 실었다.

인성에 대한 자본의 공격이 첨예화된 사회, 그 안에서 소멸되지 않기 위해 고투하는 인물에 대한 묘사는 한층 세련되고 깊어진 윤고은의 통찰력에 전적인 신뢰감을 안겨준다.

신예로서의 기발함과 패기로 주목받았던 윤고은은 어느덧 등단 11년차의 짧지 않은 경력을 쌓았다. 한권의 소설집, 두권의 장편을 출간하는 동안 증명되어온 그의 독보적인 상상력은 `알로하`에 이르러 이제 그 자체로서 빛이 날뿐만 아니라, 서사와 인물의 개연성과 단단히 결합해 주제의 완결성을 견인한다. 신랄하게 현실을 고발하기보다는 세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상황을 슬쩍 끼워두는 세련된 서사 운용력 역시 그의 필력이 단단하게 여물었음을 증명한다.

윤고은은 자본주의의 허울과 그것의 내부에서 본질이 좀먹는 사태를 직시해왔다. 그런 그의 눈에 띈 것은 우리 사회가 `전시`되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내밀한 가치인 가정조차 시간 단위로 전시되고(`사분의 일`), 하객을 고용한 결혼식을 전시하고(`월리를 찾아라`), 부동산 값을 올리기 위해 소설의 배경이 되기로 작정한 도시는 모든 공간을 소설에 맞게 부수고 세워 전시한다(`Q`). 그런가 하면 록밴드 퀸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가 살았던 집에 우연히 세를 든 `프레디의 사생아`의 주인공은 집을 전시공간으로 만들어 프레디 머큐리의 가짜 소지품을 전시하는데, 작품의 마지막 문장은 자못 깊은 울림을 남긴다.

“이제 그 집에는 모든 것이 있다. 단지 프레디 머큐리의 목소리만 없을 뿐이다.”(40쪽)

프레디 머큐리를 규정하는, 그를 감싸고 있는 아우라의 본질은 분명 그의 목소리다. 그러나 자본의 짙은 그림자 아래 개체의 고유한 아우라가 모두 지워지는 것, 본질과 비본질이 뒤바뀌고 가품이 진품의 자리를 가로채는 아수라장이 바로 윤고은이 바라본 세계의 초상인 것이다.

`알로하`의 아홉 작품은 주인공들이 존재증명을 위해 벌이는 처절한 싸움의 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인의 고유한 개성이 그다지 지켜져야 할 가치로 자리매김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주체들은 자신의 존재가 사라지거나 잊힐까 전전긍긍할 뿐이다. 이 세계에서 잊히지 않기 위해, 남들과 분별되는 자신의 존재를 확인받기 위해 인물들은 외로운 싸움을 계속한다. 능력은 초 단위로 평가되고 사회에 유익한 존재가 아니라는 판단이 내려지는 즉시 생존은 위협받는다. 그 누구도 평온하게 존재하지 못한다.`P`의 주인공 `장`은 회사에서 내쫓기며 도시 안에서 자신을 증명해주던 주소 `P259′를 사용할 수 없게 되자 자신을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다는 불안에 휩싸인다. 결국 그는 그 정체성을 되찾기 위해 동료를 배신하고 자신을 내쫓은 회사로 되돌아가 새 주소 `P1765′를 부여받는다. 그런가 하면 회사에서 내쫓기고 책 광고를 하는 새 직장에 들어간 `요리사의 손톱`의 주인공 `정`은 지하철에서 최대한 사람들의 이목을 끌며 책을 읽어야 한다.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며 사람들의 시선이 책에 꽂히길 바라지만 역설적으로 그 책이 전국적으로 유명해지는 건 정이 선로 위로 투신한 뒤다.

수록작 중 비교적 최근작인 `알로하`와 `콜럼버스의 뼈`, `해마, 날다`는 고독한 개인에 대한 윤고은의 고찰이 새로운 지점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세 이야기는 모두 `기억`의 문제를 환기한다. 개인의 존재와 정체성은 실상 타인의 기억 속에서 완성된다는 것, 그러므로 누군가의 기억에 스며 있다는 것이 바로 우리의 존재증명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고독한 개인들은 공동의 기억 안에서 구원된다. 이 몇편으로 윤고은의 서사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말하는 것은 조금 억지스러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 소설가 윤고은

것은 분명, 이 파괴되어가는 세계에서 저마다의 싸움을 하는 개인들이 서로를 구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나직한 희망의 메시지가 아닐까.

나의 말이기도 하고 당신의 말이기도 한 그 이야기들. 윤고은은 서로 얽히고설켜 분리가 불가능해진 우리의 이야기들을 부려놓는다.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온몸으로 악다구니를 쓰는 것조차 우아하지 않느냐고, 어쨌거나 삶은 우리 모두가 완성해야 할 저마다의 악보가 아니겠느냐고 말을 거는 듯하다. 그리고 하루하루 힘들게 스스로를 지켜내는 삶들에게, 알로하, 하고 조심스레 인사를 건넨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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