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게` 성윤석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128쪽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체험을 통해 시어에 삶의 신산스런 목소리와 날것의 냄새를 덧입히는 시인 성윤석(48)이 어시장 `일용잡부`가 돼 돌아왔다.

이 시집에는 시인이 가족의 생계를 위해 배달 오토바이를 타고 부둣가를 누비며 틈틈이 쓴 시 74편이 수록돼 있다. 극장을 드나들던 소년(`극장이 너무 많은 우리 동네`)은 묘지 관리인(`공중 묘지`)을 거쳐 지금은 남쪽의 한 바닷가 도시(마산)에 정착해 있다. 스스로를 `잡부`라 칭하는 시인은 어시장에서 냉동 생선상자를 배달하거나 냉동생선을 손질하는 일을 하고 있다. 시인은 그렇게 한동안 시를 잊고 지내다가 그곳의 상인들과 소주잔을 기울이던 중 모처럼 시심을 일으킬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번 시집에는 멍게를 비롯해 문어, 상어, 해월(海月, 해파리), 사람이 된 생선(임연수), 빨간고기(적어), 호루래기(오징어의 새끼) 등 많은 수산생물들이 주요한 시재로 등장하는가 하면 요구, 통발, 유자망, 딸딸이 등 일상에서는 보기 힘든 어로 도구들도 자주 보인다. 문학평론가 오형엽은 이를 두고 성윤석이 자연 생태의 한 극단을 통해 현재와 과거의 체험을 증폭시키고 있다고 분석한다.

“결국 성윤석 시의 비밀은 `체험의 강도`와 `실험의 밀도`가 강력하고 집요한 `기억`의 힘에 의해 합체되면서 두 몸이 아니라 한몸을 이루는 데 있을 것이다.” ―오형엽 해설 `체험의 강도와 실험의 밀도` 부분

이번 시집에서의 성윤석은 약 200년 전 진해(마산 진동의 옛 지명)에서 귀양살이를 하던 당정 김려가 우리나라 최초의 어족 도감 격인 `우해이어보(牛海異魚譜)`를 쓰던 모습과 닮았다. 시인은 스스로를 부둣가에 유폐하고 수면 위로 끌려나와 퍼덕이는 생선처럼 불가능한 것을 갈구하지만 아무것도 해내지 못하는 그 서러운 힘은 삶의 비릿함만 더할 뿐이다. 희망은 너무 멀리 있고 슬픔만이 번민의 몫으로 돌아오는 상실감에도 불구하고 와 닿지 못할 빛은 감당하기 어려운 밝기로 시인을 향하고 있다. 달이 너무 환해 무서운 월명기(月明期)에 심연으로 깊이 숨어드는 바다짐승들처럼 시인은 세계의 명징함을 피해 끊임없이 침잠하는 중이다. 그렇게 시인은 오늘도 현실과 이상의 괴리가 괴로워 의도적으로 의식을 지워내고 있다. 독자는 침잠의 그 어느 지점에서 시인의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던 격렬한 투쟁이 일순 정지하고 시의 미학이 절정으로 치닫는 것을 보게 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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