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나희덕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205쪽

1989년 등단 이래 섬세하고 따뜻한 시선, 간명하고 절제된 형식으로 생명이 깃든 삶의 표정과 감각의 깊이에 집중해온 나희덕 시인이 `야생사과`(2009) 이후 5년 만에 일곱번째 시집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문학과지성사)을 펴냈다.

무한 허공을 향해 마른 가지를 뻗는 나무에서 저 무(無)의 바다 앞에 선 여인의 노래에 이르기까지 이번 시집에는 죽음의 절망과 이별의 상처를 통과한 직후 물기가 마르고 담담해진 내면에 깃들기 시작하는 목소리와, 자신이 속한 세계 전체를 새롭게 바라보려는 시인의 조용하고도 결연한 행보가 가득하다. “떼어낸 만큼 온전해지는, 덜어낸 만큼 무거워지는 이상한 저울, 삶”(뒤표지 시인의 산문)을 온몸으로 부딪쳐온 시인은 이제, “수만의 말들이 돌아와 한 마리 말이 되어 사라지는 시간”(`말들이 돌아오는 시간`)을 맞이하고 있다. 어쩌면 존재의 시원인 깊고 푸른 바다에서 시인이 만나는 무수한 말들과 그가 내보낸 한 마리 말, 이들의 상호순환적인 움직임은 해변에 이르러 부서지는 흰 포말처럼, 무의 허공으로 사라지는, 자신의 전 존재를 건 도약으로 볼 수 있다.(남진우, 시인·문학평론가) 그 도약은 “무언가, 아직 오지 않은 것”(무언가 부족한 저녁`)처럼 어느 날 찾아드는 목소리일 사랑에의 희구, 궁극적으로 시인이 쓰고자 하는 한 편의 시를 향한다.

첫 시집 `뿌리에게`를 필두로 등단 초기에 자기희생과 소멸까지 감내하며 묵묵히 포용하는 대지와 초목의 은밀한 교감 그리고 그 생성의 궤적에 주목했던 시인은 이번 시집의 첫 장에 한 그루의 나무로 자신을 설정하고 마를 대로 마른 가지의 이미지에 스스로를 투영한다. “나부끼는 황홀 대신/스스로의 棺이 되도록” 허락해달라는(`어떤 나무의 말`) 간절한 호소는 언뜻 내적 세계에 봉인된 시적화자의 소멸과 쇠락을 향한 죽음충동으로 읽힐 수 있다. 최근 정치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온 사건들에 대한 감회를 담는 등(`아홉번째 파도`) 주로 2부와 3부에 안타까운 죽음과 상실의 시간들(“피에서 솟구친 노래, 모래언덕을 잃어버린 파도”-`들리지 않는 노래`)이 산재해 있다.

“말들이 돌아오고 있다

물방울을 흩뿌리며 모래알을 일으키며

바다 저편에서 세계 저편에서

흰 갈기와 검은 발굽이

시간의 등을 후려치는 채찍처럼

밀려오고 부서지고 밀려오고 부서지고 밀려오고

나는 물거품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이 해변에 이르러서야

히히히히힝, 내 안에서 말 한 마리 풀려나온다”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부분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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