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있는 사람` 박창원 지음 북랜드 펴냄

포항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수필가 박창원씨가 첫 수필집 `향기있는 사람`(북랜드)을 펴냈다.

“수필은 숲 속으로 난 평탄하고 고요한 길”이라고 했는데 구전민요를 연구해온 향토사학자이자 중학교 교장이기도 한 박씨의 수필은 착한 총각이 새초롬한 아가씨와 산책하는 풍경이다. 총각은 끊임없이 말을 걸고 꽃을 따다 바치지만, 아가씨는 조금 눈을 주는 듯하다가 만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아가씨 눈길에 고마움이 담겨 있다.

김윤규 한동대 교수는 서평에서 “제목만으로도 내용이 짐작되는 수필집이다. 그러면서 이 수필집은 박창원이 사는 풍경을 가감없이 드러낸다. 어차피 친절하지 않은 세계이지만, 그럼에도 한없이 섬세한 자아의 시선이 잡아낸 기록”이라고 적고 있다.

박창원의 시선이 가장 먼저 머문 곳은 부모님이다. 누구에게나 그렇지만 박창원에게 아버지는 자신의 전사(前史)이다. 보이지 않는 전생(前生)을 우리가 현생에서 가장 비슷하게 추체험할 수 있는 방법이, 아버지를 보는 것이다. 박창원은 그 눈길로 아버지를 보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아버님에게 있어서 소는 아직 소다. 송아지 내다 팔아 `엄무~`하고 울면 가슴아파하시고, 다른 집 소들이 소똥 밭에 뒹굴지언정 하루에도 몇 번씩 마른 짚으로 진자리 덮어주시는, 논을 갈거나 달구지 끌지 않아도 여름엔 꼭 풀을 뜯어다 먹이시는 아버님에게 있어서 소는 여전히 소다. -`쇠죽을 끓이면서` 중

아버지만 소를 닮아가신 것이 아니다. 아버지를 통해 그의 후생 박창원 또한 소의 심성을 닮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에게 아버지는 `우직`하시면서도 `고집스러움`을 잃지 않은 자신의 원형이다.

그렇게 아버지는 그의 전생이 되셨다. 그 그리움을 눈망울에 가득 담은 박창원의 다정한 시선은 이제 가족에게 향해 있다. 아버지가 그리운 만큼, 자신이 만든 가족에게 자신은 어떤 전생이 될 것인가 하는 것이 박창원의 다음 과제이다. 다른 수필가도 그렇지만, 박창원의 수필에서도 `아내`, `가족` 등의 단어가 유난히 많다.

박창원의 따뜻한 시선은 다음으로, 교직의 현장인 학교를 향해 있다.

박창원은 교장선생님이다. 시골 중학교에 청년교사로 부임해서 30년을 꾸준히 근무해 교감을 거쳐 교장이 되었다. 그는 천성적으로도 선생님이지만, 이런 오랜 체험은 그를 더 뼛속까지 선생님이 되게 했다.

박창원은 자신의 작품에서 천상 선생일 수밖에 없는 자기 성품과 행실을 고백하면서, 마침내 좋은 선생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있다.

선생인 박창원의 눈에는 모든 것이 가르칠 내용으로 보인다. 그는 나무를 보아도 돌을 보아도, 내연산 굽이굽이 폭포를 보아도, 그저 이걸 학생들에게 가르칠 생각만 한다. 이렇게 다정한 눈길을 가진 이에게 학생을 처벌하기도 하고 교사응모자를 탈락시키기도 해야 하는 교장은 참으로 부담스럽다. 그의 수필에 낯선 고뇌의 흔적이 보이는 것은 그 때문이다.

 

▲ 박창원 수필가

박창원의 시선이 가장 따뜻하게 가는 것은 남보다 작은 것들이다. 모두들 크고 화려한 것을 선망하고 흠모할 때도, 박창원은 작고 고운 것에 눈길을 주고 있다. 혹시 그 화려함 때문에 작은 것들이 눈에 보이지 않을 때조차, 박창원은 그 떠들썩한 자랑잔치를 헤집어서 작고 고운 것들을 찾아 그 수줍은 빛에 눈을 맞추고 있다.

그는 모래 속에 파묻혀 보이지도 않는 개미귀신을 우리에게 소개하기도 하고, 거미줄에 걸림 송장메뚜기를 우리 눈앞에 들어 보이기도 한다. 어디 산골에서 금방 나온 착해빠진 소년 같은 호기심으로, 박창원은 운동장의 왕바랭이 한 포기도 그저 지나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수필에는 엄숙한 교장회의의 풍경도 없고, 높은 사람과의 개인적 인연도 없고, 하다못해 지방유지와의 요란한 술자리조차 없다. 교사의 꽃이라는 교장쯤 되었으면 좀 더 화려하고 거대하고 이름난 것들에도 눈이 갈 법한데, 그는 그저 작고 못난 것들에 관심이 많다.

박창원은 우리와 함께 고백하고 있다. 우리가 얼마나 작고 여린 존재인지. 그래서 우리가 얼마나 가냘프고 소중한 존재인지를 고백하고 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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