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진 규

앞가슴이 아득하게 고일 때가 있고 뒷등이 아득하게 서늘해질 때가 있다 거기서 그만 내려오라고 내려올 때가 많이 지났다고 하지만 채우고 비우는 일이 일상이라서 봄날과 가을밤의 아득하게가 그렇게 다른 것이 아직은 좋다 무게도 다르다 봄날은 아득하게 채워져 술잔으로 조금씩 엎질러지는 전경이고 가을밤은 아득하게 비어 깊은 산 그대로가 나의 배경이다 패랭이 꽃잎 하나도 봄날 꽃잎들은 살이 져 가고 가을 코스모스 꽃잎들은 까칠하게 소름이 돋는다 그런 살로 만져지는 황홀이다 다르다 길 없는 길로 아득하게 지팡이도 없이 수소문해 가고 있다 다르다 아득함이 길이다

 

 노시인이 느끼는 아득함은 우주 만물이 근원적으로 가지는 존재의 아득한 외로움 같은 것이리라. 이제 그만 올라가고, 이제 그만 채우고 내려오고 비워야할 때가 되었다고 하지만 채우고 비우는 일들이 일상이어서 그 자체가 몹쓸 욕망은 아닐 것이다. 자연스럽게 비워지고 채워가는 일들이 우주 만물의 일들이고 인간사가 아닐까. 영원히 살수 없는 몸이라고 하지만 영원의 범주에 얹혀 가고 있는 우리네 한 생이란 아득함에 놓여있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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