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회든 남들의 존경을 받는 인물들이 있다. 남다른 노력으로 높은 사회적 평가를 받는 지위에 오른 사람들이다. `귀족은 귀족의 임무가 있다`라는 말속의 그 귀족형 인간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도층 인물들은 `귀족의 임무`를 다 함으로써 존경을 받았다. 존경받고 선망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을 우리는 `사회지도층`이라 부르고, 그들은 우리사회의 `기준`이 된다. “모름지기 저런 인물이 돼야 한다”라는 분위기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로마와 신라의 귀족들은 매사 솔선수범함으로써 그 `기준`을 만들었다.

그런데 오늘날 `존경받을 만한` 인물들이 사라져간다. 필부필부나 시정잡배나 다름 없는 파행을 하는 `사회지도층`인물들이 너무 자주 보여지기 때문이다. 영화관에서 유명 사립대 교수가 뒷좌석의 여성 치마속에 카메라를 넣어 사진을 찍다 들켰는데 그는 도망치다가 명함을 떨어뜨리는 바람에 신분이 들통났다. 한 목사는 서울 지하철에서 젊은 여성의 몸을 더듬다가 들켰다. 신학대학 대학원생은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에서 성추행을 했다. 광주 광역시에서는 의사 4명이 술에 취해 시내버스를 발로 차며 행패를 부리다 경찰에 잡혀갔다.

중국인 의료관광을 도운다며 멀쩡한 사람에게 허위진단서를 끊어준 의사·한의사가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다.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은 한 중견기업 회장 부인은 허위진단서를 발부받아 형집행정지를 받고 특급병실에서 수년간 자유롭게 살았던 일이 밝혀져 `사모님 방지법`이라는 기상천외한 법안까지 생겼다. 한 판사는 이웃집 승용차 열쇠구멍에 접착제를 넣고 타이어를 펑크내는 장면이 CCTV에 찍혀 지상파 방송에 보도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승려들이 수년간 상습도박판을 벌인 일이 드러났다.

권력과 영향력을 가진 사회지도층은 우뚝한 위치에 있다는 이유로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다. 그래서 더욱 행동을 조심하게 된다. 이른바 신독(愼獨), `혼자 있어도 몸가짐을 신중히 한다`라는 수양과목이다. 주시를 받는 신분이라면 당연히 남의 시선을 의식해야 하고, 혼자 있을 때도 군중속에 있는 것처럼 신중히 행동하는 것이 옳다. 그래서 자녀들을 훈계할 때도 “너는 모름지기 저런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것이고, 그래서 이런 인물들은 `사회의 기준`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이런 `기준`이 담벼락 무너지듯이 허물어진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심각하게 병들어가고 있음을 말하는 현상이다. 사회지도층이 더 이상 `귀족의 임무`를 이행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귀족도 일반인이나 시정잡배와 다름 없이 행동하겠다는 것이다. `본보기`가 사라져가는 사회는 바로 `인성`이 망가진 사회이다. 인간의 사회가 비인간적으로 변해가는 이 위기상황을 보고만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