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처칠 경이 말했다. “유능한 정치가는 늘 장미빛 미래를 국민들에게 약속한다. 그리고 그것이 제대로 되지 않을 때 매우 그럴듯한 핑계를 갖다 댈 줄 아는 사람이다. ”MB정권 시절 남부권 신공항 건설이 무산됐을 때 처칠의 이 말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영남권 35개 후보지역을 놓고 정밀 타당성 조사를 한다고 요란을 떨었고, 부산 가덕도와 경남 밀양이 최종 선정되자 두 지역간의 유치경쟁은 그 치열도가 상상을 초월했다. “우리지역이 발전하느냐 답보하느냐 하는 것은 신공항에 달렸다. 죽느냐 사느냐”하며 사생결단하고 유치경쟁을 벌였다.

두 지역 다 각각 타당성 조사를 벌였다. 물론 아전인수격인 조사결과가 나왔지만 엄청난 용역비가 들었음은 물론이다. 또 해당 지역출신 정치인들이 일제히 끼어들었다. 국회의원이라고 다 똑같은 국회의원이 아니다. 당직을 맡았거나 국회내에 직분을 가진 3선 이상 `유력 의원`의 입김은 훨씬 강력하다. 그래서 한 때 “부산 가덕도가 유력하다”는 소리도 나왔고, `밀양 편`에 선 국회의원들은 “힘에 밀린다”며 의기소침했다.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평가 결과는 공개되지 않았는데, 그런 타당성 조사 같은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힘 있는 정치인들의 영향력`이 좌우할 뿐이었다. 좌파정권 시절 `세계 태권도 공원`을 선정할 때 가장 적절한 곳은 경주지만 터무니 없이 무주 구천동이 선정된 것이 한 사례다.

공연히 시간을 끌다가 정권 말기가 다가오자 MB정권은 묘수를 썼다. 신공항 건설 문제는 다음 정권을 위해 미결로 남겨둔 것이다. 선거에 이것보다 요긴하게 써먹을 아이템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그럴듯한 핑계를 대어서 무산시켰다. 그 핑계란 것이 “두 지역간의 갈등 마찰이 너무 심해서 자칫 국론분열을 빚을 위험성도 있다. 동서갈등도 문제인 데, 영남권 내부의 갈등이 또 발생하면 그것은 불행한 일이다.” 영남지역민들은 이 결정을 비교적 순순히 받아들였다. “남이 먹고 내가 굶는 것보다는 다 같이 못 먹는 것이 속은 더 편하다”란 인간심리가 작용한 것이었다.

예상대로 지난 대선(大選)때 남부권 신공항이 공약으로 나왔다. 한번 속아본 국민들은 그래도`큰 파이가 너무 탐나니`혹시 우리지역에 떨어지려나 기대를 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에서도 신공항문제는 미적거리기만 한다. 지방에서는 “신공항 로드맵을 제시하라”고 아우성이지만 쓰다 달다 말이 없고, “신공항 수요조사와 타당성 조사를 동시에 실시하자”는 지역의 요구에 대해서도 “5개 시도의 갈등을 초래하기 때문에 안된다”고 했다. 남부권 신공항은 국토균형발전과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데, 정치권은 그것을 언제까지 선거용 `장미빛 그림`으로만 남겨둘 작정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