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우리는 같이 북쪽으로 갔다. 서울의 북쪽. 양주 광릉 봉선사를 거쳐, 포천으로. 거기서 일박하고 양평의 소나기 문학촌으로, 그리고 다시 철원으로, 고석정으로.

학생들과 함께 답사 다니는 것은 실로 유쾌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젊은이들과 어울려서 뭐 그리 좋은가. 이렇게 물으시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글쎄, 무엇보다 생각이 가벼워져서 좋다. 나는 답사를 2박3일을 가면서도 가방안에 컴퓨터며, 책이며, 밤에 입고 다음날 갈아입을 옷가지들을 쑤셔 넣어 도르레 달린 캐리어 말고도 배낭 하나를 더 가져가야 했다. 학생들은 다들 가뿐했다.

꼭 짐 얘기가 아니란 걸 다들 아실 것 같다. 이네들은 이것저것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단순하고 투명하다. 그렇다고 생각이 얕다는 게 아니고 순수하다는 쪽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어른이 되어 덕지덕지 묻히고 다니는 낡은 인습과 편견, 세상에 대한 차별상들에서 조금이라도 더 거리를 두고 있다는 것. 이것이 젊은이들의 미덕이다. 청년들에게 배우라. 이것은 수사가 아니다.

다음으로, 생각이 젊어져서 좋다. 이네들은 활기차고 그만큼 생각이 민첩하다. 아직 때묻지 않은 기상이 가슴속에 꽉 차 있어 생기가 있다. 청년들과 어울리다 보면 내가 어느 지점에 와 있는지가 보이고 또 그런만큼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한 살이라도 더 적게 먹은 사람이 되고 싶어진다.

물론 나이가 드는 것은 나쁜 일만이 아니다. 어른들은 시간과 함께 점점 더 많은 경험을 간직한 백과사전이 되어간다. 아프리카 속담에 노인이 세상을 뜨는 것은 백과사전이 불타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젊은이들이 공백의 힘으로 새로운 것을 힘차게 흡수해 들이고 새로운 창조를 열어가는 것은 옆에서 보기만 해도 신나는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 것이라 했는데 날씨도 화창했다. 포천 지나 철원 근방에 가니 생전 처음 그곳까지 올라가서 그런지 지형이 독특해 보였다. 고석정이라는 곳은 낯설지만 계곡 단층을 따라 내가 흐르고 바위와 나무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곳이었다. 임꺽정이 이곳에서 삶을 마감했다는 전설이 숨쉬는 곳이라 한다.

고석정에 앉으니 무릉은 높은 곳에 있지 않고 낮은 곳에 있다. 고석정 경치를 만끽하려면 아래로 계단을 따라 이 백 미터 이상을 내려가야 한다. 내가 지금 디디고 서 있는 땅보다 더 아래 쪽에 아름다운 무릉이 숨어 있었다고 생각하니, 생각의 관습이 깨어져서 좋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모두 낮은 곳에서 가장 완전한 상태로 태어났다. 아무 옷도 걸치지 않고 아무 생각도 없이 아무런 부족함도 느끼지 않고 오로지 생명의 원리에 맡겨져 어머니의 젖만 있으면 되는 애기들이었다.

이 애기들이 크면서 타자를 통해 자연에 어긋난 욕망을 익히고 그것 때문에 비틀어진다. 어릴수록, 젊을수록 그들 스스로 느끼지 못하는 완전함이 크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둘째날의 숙소는 가평 어느곳의 유스호스텔이었다. 젊은이들, 청년들의 계절인지라 다른 곳에서도 봄나들이 온 학생들이 꽤 눈에 띄었다.

좋고 또 좋은 봄의 답사. 이 여행에 단 한 가지 아쉬운 게 있었다면 공익적일 유스호스텔의 설비와 위생이 아주 낙후해 보였다는 점이다. 그곳은 젊은이들을 위한 숙박공간이다. 가진 것 없는 젊은이들이 심신을 수련할 만하기로는 자연만 한 것이 없고 여행만 한 것이 없다.

이들에게 더 나은 공간을 허하라. 나는 우리나라가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윤택한 경제를 누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때 더 많은 것을 청년들에게 드리라. 이것이 우리 미래를 더 밝게, 활기차게 만들어 주지 않겠는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