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를 원하지 않는 입술 ` 김용택 지음 창비 펴냄, 120쪽

▲ 김용택 시인

삶의 체험에서 우러나는 진솔한 언어와 빼어난 감수성으로 전통 서정시의 감동을 수많은 독자들에게 선사해온 김용택 시인의 신작시집 `키스를 원하지 않는 입술`(창비)이 출간됐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사라지는 것들과 곁에 남아 있어주면 좋겠는 것들”(이철수, 추천사)을 애틋한 그리움으로 노래하며 자연의 숭고한 아름다움과 그 자연과 어울려 살아가는 삶의 존귀함을 일깨운다.

`섬진강` 연작 4편 새롭게 수록
하찮은 존재들의 무한한 가치 노래
한국문학 기념비적 성과로 평가

우주적 질서를 관조하는 고요한 사유의 세계와 물질적 욕망에 포섭돼 삶의 진정한 가치와 참된 행복에서 점점 멀어져가는 이 시대를 통렬하게 일갈하는 우수 어린 목소리는 김용택 시의 새로운 진경을 이룬다. 우선 눈에 띄는 점은 김용택 시인을 일컫는 하나의 이름이기도 한 `섬진강` 연작 4편이 새롭게 수록된 점이다.

시인의 첫 시집 `섬진강`을 시작으로 한 `섬진강` 연작은 주지하다시피 한국 농촌시의 전형이자 한국문학의 기념비적 성과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이번 시집에 추가된 `섬진강` 30~33에서 시인은 가난과 소외의 아픈 과거를 현재적 의미에서 반추하거나 아름다운 섬진강을 앞에 두고 역설적으로 느끼는, 생의 고독과 팍팍해져만 가는 현실로 인한 심적 갈등을 그려낸다. 그 자체로도 명편들이되, `섬진강` 연작의 의의를 지금 여기에서도 가져가려는 시인의 부단한 시적 갱신이 무척이나 인상적인 작품들이다.

“바닥이 다 보이는 강물 속 돌멩이같이 해맑은 얼굴들,/봄볕은 가난한 얼굴들의 그늘까지 벗긴다./붕대 감은 손이 자꾸 욱신거린다./고향으로 다시 갈까./직장을 옮길까./가난한 사람들에게/가난이 약속된 땅은 서러운 땅이다./나도 발끝으로 땅을 툭툭 찬다./돌부리가 걸렸는지 발가락이 아프다./이가 마주치는 이 가난,/돌멩이 끝이 보인다./흩어진 흙을 모아 다시 돌멩이를 덮는다./햇살 때문인지/이마가 뜨겁다.”(`섬진강 30`부분)
 

특별한 존재보다는 사소한 것들에 애정을 쏟는 김용택의 시는 곧 우리가 살아가는 이야기이기에 친근하게 가슴에 와닿는다. 시인은 지난날 “바닥없는 슬픔”(`섬진강 31`) 에 잠긴 채 “까만 돌처럼 쭈그려앉아 눈물을 흘”리던 “스무살 무렵”(`달콤한 입술`)을 떠올린다. 그 세월을 지나 어느덧 인생의 황혼길에 접어든 시인은 “사는 일들이 헛짓이다 생각하면, 사는 일들이 하나하나 손꼽아 재미있다”(`삶`)고 말한다. “문득 모든 풍경들이 생소해지는 이 호젓한 외로움” 속에서 “괜히 수줍”고 “모든 것들이 처음처럼 부끄러워 죽겠다”(`말이 머문 입술`)고 고백하는 시인은 더는 “삶에 여한을 두지 않기로 한”(`삶`) 너그러운 마음으로 차분히 세상을 바라보며 “하찮은” 존재들의 “무한한 가치”를 새삼 깨닫는다.

“이 저녁/지금 이렇게 아내가 밥 짓는 마을로 돌아가는 길, 나는/아무런 까닭 없이/남은 생과 하물며/지나온 삶과 그 어떤 것들에 대한/두려움도 비밀도 없어졌다./(…)/혼자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지금의 이 하찮은, 이유가 있을 리 없는/이 무한한 가치로/그리고 모자라지 않으니 남을 리 없는/그 많은 시간들을 새롭게 만들어준, 그리하여/모든 시간들이 훌쩍 지나가버린 나의 사랑이 이렇게/외롭지 않게 되었다.”(`이 하찮은 가치`부분)

자연의 섭리와 인생의 순리에 따르고자 하는 시인은 “세상을 한 손에 쥐고 무엇이든 한번의 터치로 끝”내고 “한순간도 쉬지 않고 굴러갈 뿐”(`바퀴들은 쉬지 않는다`)인 “통제 불능”(`농사의 법칙`)의 자본주의 기계 문명에 맞서 결연한 목소리로 날카로운 비판 인식을 드러낸다. 시인은 “서정의 철조망을 넘어간 시들이/도시의 뒷골목에서/기아에 허덕”이는 삭막한 세상에 “눈물을 흘리는 기계”와 “비애를 느끼는 터미네이터를 만들고 싶다”(`바퀴들은 쉬지 않는다`)는 소망을 키운다. 물론 “그런 날이 오리라고, 쉽게 믿지 않”지만 “차례와 기다림과 일관성”의 법칙에 따라 “꽃 피던 시절, /꽃들이 흐르는 강물 소리로 왁지지껄 만발하던 시절”(`농사의 법칙`)을 되새기며 꿈꾸기를 멈추지 않는 것이다.

시인은 또한 자본주의의 냉혹한 현실과 더불어 왜곡된 역사의 진실을 똑바로 바라보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기도 한다. “현실은, 받아들이라는 말이니, 무섭다.”(`뇌`) 하지만 또 “현실은, 바로 본다는 뜻 아니냐.”(`젖은 옷은 마르고`)는 단호한 목소리로 현실에 대응하는 시인의 옹골찬 자세는 그의 시적 출발의 또다른 면모이기도 하다. “전율하던 그 하얀 공포,/치명적인 치욕, 무서운 현실/오! 시,/시였어.”(`달콤한 입술`)라는 처연한 고백에서 확연하게 드러나듯, “너는 어느 쪽이냐”는 질문으로 상징되는 현대사의 질곡과 치욕적인 현실에 맞서는 시인의 결기야말로 그의 시의 참된 목소리에 다름 아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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